사람에게 쾌적한 집안 온도는 보통 화씨 68-72도라지만 이것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따스한 남부에 오래 살았던 탓인지 아니면 나이 들면서 지방이 줄고 피부가 엷어 져서 체온을 유지하기 힘든 탓인지, 남편과 나는 유별나게 추위를 탄다. 우리집의 실내온도는 늘 76 도 상위고 밖의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우리는 두터운 옷을 입는다.
그런데 두 딸네는 우리와 다르다. 실내온도를 주로 68-70도로 유지하는 작은딸네를 우리는 “냉장고” 라 부르고, 66도를 지키는 큰딸네는 “냉동고” 라 부르르 떤다. 그러니 겨울에는 냉장고 방문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냉동고는 아예 찾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어린 손주들도 부모처럼 약간 서늘한 기온에 익숙해서 가볍게 옷을 입는 바람에 나는 감기 걸릴까 우려하고 아이들이 우리집에 오면 덥다고 웃통을 홀랑 벗어버리는 바람에 기겁을 한다.
작년 늦가을에 큰딸네가 버지니아주에 새로 이사한 집을 보러 갔다가 추위가 다가오자 부리나케 남부로 떠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조지아주 매리에타에 있는 작은딸네에 들렀다. 마침 영국 사돈부부가 손주들 보러 와 있어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며칠 머물 계획이었다.
재밌는 일이 그때 일어났다. 우리가 방문하면 딸은 집안 온도를 적당히 올려서 우리가 편안하게 지내도록 배려해준다. 우리는 좋았지만 정작 죽을 맛은 사돈네가 겪었다. 그들은 실내온도가 65도라야 편한데 우리 때문에 집안이 훈훈하니 따로 불평은 못하고 옷을 가볍게 입고도 덥다며 부채질을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우짜노?” 미안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을 보낸 바로 다음날 우리는 앨라배마 집으로 돌아왔고 딸네 집안 기온은 팍 내려갔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1학년인 손주가 봄방학을 맞는데 딸과 사위가 동시에 출장 계획이 잡혀서 SOS 구조요청을 보냈다. 3월 중순에 다시 냉장고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겨울 옷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집안에서 스페이스 히터를 들고 다니는 남편과 스카프를 두르고 겹겹이 두터운 옷을 입은 나를 아직 늙어보지 않은 사위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너도 훗날 겪을 테니 두고 봐. 노인들에게 좋은 집안온도는 78도란다” 중얼거렸다.
딸이 먼저 해외로 떠났고 사위가 플로리다로 떠나자 남편은 집안 온도를 높였다. 넓은 집안을 데우기가 쉽지 않아 남편은 여전히 스페이스 히터를 틀었다. 사위가 아이와 구경가라고 알려준 곳들은 들리지 않았다. 비 오고 흐린 써늘한 기온에 내 속의 장기들이 굳어서 도무지 무엇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식당과 실내 놀이터를 찾았다.
마침 지난달 마음 좋은 한인이 잔뜩 준 한글 동화책을 한 박스 싣고 온 것을 아이에게 읽어줬다. 아이는 한국학교에서 배운 한글로 제법 읽지만 뜻을 모르니 영어 설명을 보탰다. 매일 아이와 한국이나 세계 전래 동화, 이솝우화를 읽고 독후감을 나누는 재미가 대단했다. 그리고 올해 아이와 새롭게 시작한 게임을 계속했다.
1월초부터 일주일에 세번 나는 질문을 쓴 카드를 아이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내가 보낸 편지를 아이가 직접 읽고 질문에 답을 찾을 적에는 구글 사용은 절대 안되지만 부모의 도움은 받아도 된다는 했다. “지구 7 대륙 중에 크기가 가장 큰 것은 무엇? 지구의 나이는? 스페이스에 제일 먼저 간 사람은 러시아인 아니면 미국인? 외국에 가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은 누구? 다임 동전에 있는 얼굴은 누구?” 등 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는 좀 엉뚱했지만 아이는 진지하게 답을 찾았다. 질문은 영어로 썼고 편지는 한글과 영어를 적당히 섞은 것을 아이가 읽는 것이 장했다. 한 정답에 10 포인트를 줘서 10 질문을 맞히면 선물을 하나씩 보냈다. 봄방학 동안 우리는 더 많은 상식적 지식을 나누었다.
사위가 출장에서 돌아오자 우리 부부는 추위를 피해서 남부로 내려왔다. 버지니아주의 북부에서 81번 고속도로로 남쪽으로 내려와서 테네시 주에 들어서면서 나는 스카프를 벗었고 그리고 조지아주에 도착해서 자켓을 벗었다. 몽고메리에 있는 내 집에는 따스한 실내기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풀렸고 마음이 푸근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생활하기 편안한 온도가 무조건 나의 최적온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