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외국 선수들이 중국 선수의 우승을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추는 모습이 포착돼 파장이 커진 가운데 케냐 선수 윌리 응낭가트가 “우리는 고용된 사람들이었다”고 실토했다.
16일(현지시각) BBC 스포츠 아프리카에 따르면 응낭가트는 “경쟁을 위해 출전한 것이 아니다”며 “내 임무는 속도를 설정하고 그(중국 선수 허제)가 승리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날 대회에서는 2023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인 허제 선수가 1시간 3분 44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논란은 당시 경기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지면서다. 영상을 보면 앞서 달리던 케냐 선수 로버트 키터와 응낭가트, 에티오피아 선수 데제네 비킬라는 결승선을 앞두고 속도를 늦춘다. 한 선수는 먼저 가라고 허제 선수에게 손짓하기도 한다.
이 선수 3명은 이날 대회에서 나란히 허제 선수보다 1초 늦게 들어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허제 선수가 우승을 위해 질주했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경쟁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승부 조작을 신고하려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국 공산당 최고 사정기구)로 가면 되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앞서 응낭가트 선수는 조작논란에 대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친구라서 허제가 우승하게 했다”면서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고 금전적 보상도 없었다”고 말했다. 키터와 비킬라는 SCMP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응가와트는 이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고용된 사실을 자백했다. 자신들은 허제 선수의 ‘페이스메이커’라고 밝혔다.
BBC에 따르는 응가와트는 허제 선수가 중국 하프마라톤 기록인 1시간 2분 33초를 깨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다른 주자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들 4명 중 한명은 이날 완주하지 못했다.
응가와트는 “제게는 경쟁을 위한 레이스가 아니었다”며 “내 임무는 속도를 설정하고 그가 승리하도록 돕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중국)국가 기록 경신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작논란과 관련 그는 “왜 제 가슴 번호에 ‘심박조율기’라고 표시하지 않고 제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외국 선수들이 결승점 전에 속도를 늦추는 듯한 영상이 게재되며 논란이 됐다. 사진 엑스 캡처
이 대회를 주최한 베이징 스포츠국은 AFP통신에 “사건을 조사 중”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대중에게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허제 선수는 지난달 우시에서 열린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는 2시간 6분 57초만으로 중국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 여름 파리올림픽 출전을 노리고 있다.
세계육상연맹은 BBC에 “이번 주말 베이징 하프 마라톤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된 것을 알고 있으며 현재 관련 지방 당국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맹은 스포츠의 진실성을 최우선한다”라면서도 “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