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이다. 빠르게 하늘에 오른 전투기가 쏟아낸 천둥 같은 요란한 굉음에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귀를 막았지만 가슴은 뛰었다. 얼마만에 듣는 정겨운 사운드인가. 내 젊은 시절, 근 23년 공군에 복무한 세월은 전투기나 수송기의 소음을 받아들이고 하늘의 용사를 숭배하게 했다.
4월 첫 주말, 맥스웰 공군기지는 8년만에 항공 우주쇼를 준비하고 부대 문을 활짝 열었다. 나에게 이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그동안 여러 부대에서 열린 에어쇼에 참여자 이기도 했고 관람객이기도 했었다. 군에 복무할 적에는 에어쇼에 동원되어서 행사가 끝난 후 활주로 주변 행사장 뒷정리를 한 적이 있었고 교통질서를 맡기도 했었다. 그렇게 군복을 입고 활동하던 젊은 시절이 그리우면 군용기 소음이 그립다. 비록 다양한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임무감이 있었다. 퇴직후에는 여행중에 공군 비행시범팀의 홈 베이스인 네바다주 넬리스 부대와 해군 비행시범팀의 홈 베이스인 플로리다의 펜사콜라 부대를 찾아가서 평소 그들이 연습하는 것을 봤다. 인간이 새처럼 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더구나 파일럿을 훈련시키는 임무를 가진 텍사스의 랜돌프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비행소음에 익숙해졌고 독특한 새소리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때 활주로 근처의 보행도로에서 작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방향을 따라 걸으면서 눈으로 비행기를 따라갔던 적이 많았다. 이착륙을 연습하던 훈련생들의 걸음마를 보다가 몇달 후 자신 있게 하늘을 누비는 조종사가 된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었다. 신비의 공간인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대범한 곡예를 보여주는 군용 비행기들은 매번 나를 흥분 시키고 또한 강력한 항공력을 목격하면 내 가슴은 부푼다. 가볍게 상공에 올랐다가 둥글게 혹은 좌우로 하늘을 나풀대며 날다가 바닥을 치듯이 곤두박질 내려왔다가 재빨리 다시 날라 오르는 비행기를 따르면 나도 나의 상상력을 무한대의 공간으로 밀어 올려서 좋다.
이번 에어쇼에 공군 비행시범팀인 Thunderbird가 참여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400마일의 속도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양한 곡예를 보여준 해군 비행시범팀 Blue Angels 의 위험한 묘기는 스릴이 있었다. 푸른 화폭에 앞뒤로 위치를 바꾸고 곡예사로 360도 돌던 경비행기 조종사도 대범했고 700마일의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른 위용 당당한 F16 전투기가 불쑥 다가왔다가 천둥 같은 인사를 남기고 빠르게 시야밖으로 사라지자 내 속이 허전했다. 육군 낙하산 시범도 멋졌고 월남전에서 무공을 세운 Black Hawk 헬리콥터의 등장 또한 근사했다. 넓은 광장에 전시된 여러 모형의 비행기들의 당당한 모습도 눈을 즐겁게 해줬다.
작은 비행기가 푸른 하늘에 하얀 원을 그리고 하트 모양과 여러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다가 불쑥 3월 중순에 세상을 떠난 후배 강태웅 화가의 그림, 비상 (Flying Up)이 생각났다. 그는 없지만 생동감 있는 그의 추상화가 바로 내 눈 앞의 하늘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아들이 카톡으로 보내준 갑작스런 그의 죽음 소식을 받은 순간 당황했다.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 며칠을 멍하게 지냈다.
오래전 그가 뉴욕에서 활동할 적에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전시회에서 화폭에 물 흐르듯 출렁이던 생동감을 느꼈다. 그의 컬러풀한 추상적인 그림은 마치 삶의 진동을 침묵으로 가늠하듯 신선했다.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그가 완전히 귀국해서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었을 적에 나는 그가 방랑생활을 마치고 안정한다고 믿었다. 아름다운 자연 정경에서 받은 시적 감상을 화폭에 옮기던 그가 어느 해인가 한국에 첫눈이 왔다면서 하얀 눈꽃을 피운 겨울 나무들을 사진 찍어 보내준 것을 보고 나는 옛날의 기억에 푹 젖었었다. 우리는 간간이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선후배가 되었다가 세월이 지나며 연말에 기억하는 지인이 됐다. 이제 하늘의 구름속에 숨어버린 그는 내 가슴에 아픔으로 안겼다.
강태웅 후배의 얼굴이 그의 그림을 닮은 흩어진 구름위에 나타났다. 정겨운 그의 모습을 가까이 보려고 목을 길게 뽑으니 에어쇼를 보느라 5시간이나 하늘을 향해 제쳤던 목이 뻐근해서 잘 가시라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