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선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시가 많아서 보는 것도 조심스럽고, 관상용으로도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서다. 생긴 모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관심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선인장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정성껏 키우고 있다.
선인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엘에이 살면서부터인 것 같다. 잘 가꾼 정원에 돌과 선인장들을 멋지게 조경한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집에서 선인장을 왜 키울까 하는 생각을 접게 한 일이 있었다. 무뚝뚝하고 괴팍스럽게도 보이는 많은 종류의 선인장들이 하얀 자갈돌 위에 당당하고 멋지게 서 있는 모양새가 특별해 보였다. 그 각각의 생김새들도 들여다보니 흥미로웠다.
서부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다 보면 사막을 지나는 일이 많다. 도로 주변은 척박하고 황량해 보였고, 때로는 지루하고 나른하게 느껴지는 재미없는 느낌이었다. 그 메마른 땅 위에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안고 있는 선인장들이 언제부터 인가 대단해 보였다. 무관심하게 바라보던 나의 눈길에는 어느 사이 관심과 애정이 생겼고, 자꾸 보니 매력이 느껴졌다. 사막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에 매료되어 거친 돌밭과 햇살을 안고 걸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 위에서 따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멕시코에서 잠시 살면서 선인장들은 내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질서도 없이 제멋대로 자란 야생의 선인장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오랜 고목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았다. 납작한 선인장들이 잎처럼 가득 달려서 풍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몸통과 어울리지 않게 강열한 색으로 핀 선인장 꽃을 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선인장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멕시코 사람들은 노빨(Nopal)이라고 부르는 손바닥만 한 선인장을 많이 먹는다. 잘게 썰어서 볶은 뒤 타코에 넣어서 먹기도 하고, 고기 구워 먹을 때 같이 구워서 먹기도 한다. 샐러드에 넣어서 먹기도 하는 이 선인장은 멕시코 사람들에게 대표적인 식재료이며 그 요리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맛일까 궁금한 생각에 처음 노빨을 몇 개 사 왔던 생각이 난다. 잘게 썰어서 볶아 먹었던 첫맛은 시큼하고 물컹한 게 처음 느끼는 묘한 맛이었다. 요구르트와 함께 갈아서 먹으면 좋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는데 역시 처음에는 먹기가 쉽지 않았다.
멕시칸들이 다양한 요리로 즐겨 먹는 그 선인장을 멕시코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요리해 먹고 있었다. 노빨을 채 썰어 말린 뒤 물에 불려서 고사리나물 무치듯이 무쳐서 먹기도 하고, 무말랭이 김치 담그듯이 김치를 담아서 먹기도 했다. 식감이 쫄깃한 게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서 좋았다. 어느 사이 관심 없던 선인장은 나의 식탁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뚜나라고 부르는 노빨의 열매가 마치 곰 발바닥에 달린 발가락 모양으로 줄지어 달려있다. 큰 것은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자라서 그 머리 위에 꽃을 활짝 피운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으면 멕시칸들은 즐겨 먹는다. 보통은 붉은색과 초록색 두 가지가 있는데 붉은색은 비트처럼 색이 짙어서 껍질을 벗기다 보면 손이 붉게 물들기도 한다. 뚜나는 마켓에도 많이 팔지만 도로 주변이나 신호 사거리에서도 봉투에 넣어서 팔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걸 보면 예전에 한국에서도 차가 많이 막히는 곳에서 뻥튀기 과자를 팔던 생각이 났다.
예전에 양주병들과 술잔이 차지했던 우리집 콘솔 위에는 이제 화초들과 작은 선인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식탁 옆에 놓인 그 콘솔 위에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따라 커가는 선인장들을 바라보는 일이 내게는 일상이 되었다. 미어캣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목을 쑥 빼고 있는 모양의 선인장은 여간 귀엽지가 않다. 싫었던 것도 관심을 갖고 마음의 눈길을 주다 보면 좋아진다. 사람에 대한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가시가 있어 보여도 그 내면을 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