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석돌에 불난다’는 속담이 있다. 단단하지 않고 푸석푸석한 돌도 부싯돌이 돼 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바라는 바가 간절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고 찾으라고 하면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돌멩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한 조각이 연못에 빠졌다고 하면 어떨까? 그 다이아몬드 한 조각으로 며칠간 배를 곯고 있는 식구들을 먹일 수 있거나, 등록금 때문에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가정이라면 기어코 찾아낼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간절함이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 해주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며, 머리칼 한 올이 몸에 닿는 것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것들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과 과학으로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가끔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이런 명언이 있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닭을 좇고 있었지만, 결코 닭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호랑이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뛰었지만, 닭은 살기 위해 뛰었기 때문이다. ”
빅터 프랑클은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인물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부모와 아내, 두 자식을, 그리고 친구를 잃었다. 그러나 프랑클은 고통을 이겨냈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발동시켜 ‘의미’를 찾고 극한의 상황을 견뎌냈다.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받으면 반만 마시고, 나머지는 세수를 하기 위해 남겨 두었다. 유리 조각으로 면도까지 했다. 턱없이 부족한 물로 세수를 하려니 청결은 물론이고, 면도를 하다가 수 없이 유리 조각에 베이기도 했지만 그는 몸씻기와 면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결코 낙담이나 절망적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다른 유대인들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개돼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썼으며, 덕분에 다른 유대인들에 비해 건강해 보여 가스실행을 면할 수 있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간절하게 원한다고 전부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간절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꿈에서 온다. 빅터 프랑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비결도 간절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아서 오늘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꿈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 빅터 프랑클은 아우슈비츠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항상 ‘내가 어떻게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되었는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와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꿈속에서 나는 여러분 앞에 서서 오늘 하는 바로 이 대화를 무수히 나누었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 정년퇴임 후 절망과 좌절속에서 허우적대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한평생 직장을 삶의 전부로 알고 살아온 나에게 마땅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절망이요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 있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이 책은 우리가 하루하루 하는 일에 얼마나 집중하고 참여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몰입이 단순히 즐거운 경험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성장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묘 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오든의 시로 시작하는 이 책은 서두부터 사뭇 도전적이다. 저자는 삶의 목표를 가지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훨씬 유익하다가 주장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것은 내 만족의 원천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이루어낸다는 의식이나 의욕이 없다면 인생은 무료하고 허망할 것 같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가치 있다고 느낄 만한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인생을 나는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반 우드워드의 말이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저자는 삶을 사랑하라는 감미로운 교시를 내리지 않는다. 나 자신을 긍정하라는 공허한 구호를 되뇌지도 않는다. 그 대신, 우리가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하라고 말한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에 몰입할 수 있어야만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죽비(竹篦 )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이민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우리 부부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21년 전이었다.
살아 보니 삶은 메뉴얼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을 일으킬 만 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의 가치도 완전하지는 못하다. 세상은 내가 죽을 만큼 아파도 여전히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잘 돌아간다. 그런 세상에 맞서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들에 대해 정말 간절해져 보자.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분명 이루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기억하자. 절대 이루어지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간절한 것이 먼저다. 간절함이 답이다. “가을은 모든 나뭇잎에 꽃이 피는 제2의 봄이다.” 알베르 까뮈의 명언이다. 이걸 노년의 삶에 대입해서 바꿔 쓰면 더 멋진 명언이 탄생된다. “노년은 모든 역경이 경력이 되는 제2의 봄이다.” 역경을 뒤집어 경력으로 만드는 노년은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는 제2의 봄이다. 다만 그 봄을 준비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