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흐르는 강물처럼’
노을이 물들고 있다. 지난 날의 뜨거웠던 시간들을 풀어 내며 점점 짙어지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젊은 날의 고뇌와 순수를 잊지 말라는 듯 찬란한 붉은 빛을 쏟아 내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위에 황금빛으로 내려 앉고 있다.
휘리릭 유연한 손놀림과 함께 날아오르는 가는 줄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더니 멀리 뻗어 나가는 포물선을 만들며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예술이었다. 단지 화면일 뿐이었건만 그 깊은 강 속으로 함께 다이빙이라도 한 듯 온 몸이 시원해졌다. 그것은 거센 물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감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반짝이는 강물 속에서 작은 한 인간이 그리는 자연과의 멋진 하모니에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되는 아름다움이었다.
은퇴한 교수 노먼 매클린(Norman Maclean)이 자신의 가족을 대상으로 쓴 소설, A River Runs Through It 가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에게는 (흐르는 강물처럼) 으로 잘 알려졌다. 짧지만 아름답게 살다간 동생을 회상하며 노년에 들어 선 형이 자신의 삶과 가족을 자연의 풍경과 함께 그려낸 작품이다. 호기심 많고 낭만적인 동생과 이성적이고 모범적인 형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형제애는 남달랐다. 아버지는 형제를 데리고 강가로 나가 플라이 낚시를 즐겼다. 자연스레 형제는 하나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인내와 절제를 몸에 익혔고 그것은 인생을 대하는 기본 자세가 되었다.
아버지의 낚시법은 정확했다. 그가 터득한 최적의 방법은 10시에서 2시 사이의 방향으로 메트로놈의 정확한 박자에 맞춰 낚시줄을 던지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그의 가르침을 받은 두 형제가 보이지 않는 리듬으로 낚시 줄을 던지는 장면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정교한 박자와 음악과 같은 리듬의 규칙이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그것 만으로 충분할 수 있을까…
같은 가르침을 받은 형제지만 각자의 성향에 따라 형제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형인 노먼이 외지의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생인 폴은 신문기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모험심이 강했던 폴은 절제되지 않은 생활을 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모범적인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폴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한다. 한 인간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전적으로 사랑할 수는 있다고…
죽기 직전 폴의 마지막 낚시 장면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는 최고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목까지 들어 찬 거센 물줄기를 거스르며 폴은 자신만의 느낌으로 낚시 줄을 감고 잠시 기다렸다 다시 풀기를 반복했다. 그의 몸은 부딪치는 강물의 흐름과 함께 파도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자연의 리듬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며 세상에 녹아드는 스스로의 리듬을 찾아가는 그 모습은 진정한 삶의 경이로운 춤사위였다. 마침내 커다란 물고기가 하얗게 부서지는 강물위로 솟아 올랐다. 모든 규칙과 규범을 초월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낸 기쁨으로 가득 찬 폴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자신의 리듬을 찾아 가는 폴을 보며 우리도 모두 폴과 같이 각자의 리듬에 맞는 춤을 추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폴의 삶도 세상의 규칙에 맞춰 무난한 노년을 맞이한 노먼의 삶도 모두 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강가에 앉아 이제 노인이 된 노먼이 플라이 낚시의 미끼를 끼고 있다. 주름진 얼굴, 떨리는 손놀림 그리고 인생을 담은 그의 깊은 눈이 먹먹하게 들어 왔다. 어느새 나도 그 강가에 앉아 있었다. 저녁 노을은 점점 붉어지며 가라 앉는 태양 빛을 먹어 들어 갔다. 아름답고 찬란했던 지나간 시간들, 젊은 날의 방황, 미래를 위한 인내, 가족을 위한 절제, 모든 것을 낚시 바늘에 꿰고 강물 위로 던지는 상상을 했다.
강은 작은 파문을 만들며 강물에 녹아 든 나의 시간들을 감싸 안는다. 저녁 노을을 머금은 강물은 황금 빛을 출렁이며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