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니어 클래스 중 ‘행복 나눔’ 시간이었다. 그룹별로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나누는 행복 토크의 주제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몇 세까지 사시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였다. 내가 속한 그룹엔 80살 전후의 남자 노인들 6명이 있었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한 분이 의견을 말할 때 다른 분들이 질문도하고 코멘트도 했다.
“살다 보니 내 나이 86살이 되었습니다.” 첫번째 분이 시작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50대, 아버지는 60대, 그리고 그 전 조상들은 30대~50대를 사셨어요. 내가 지금까지는 우리 가문에서 가장 장수한 겁니다.” “몇 년생이죠?” “38년 호랑이 띠입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뵈어요! 우리 형님도 호랑이 띠인데.” “감사합니다. 평균 수명이 올라간 탓이기도 해요. 이만큼 산 것도 내가 뭐 잘해서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100세까지라도 살려주신다면 감사하지만, 내일 죽는다 해도 감사해요.”
“나도 될수록 오래 살고 싶지요. 2022년 출생한 한국 아이들의 평균 기대 수명이 82.7이래요.” 두번째 분이 시작했다. “1970~74년 출생한 한국 남자의 평균 수명은 67.5 래요.” “그래요?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1950년 전에 출생했으니 67살 되기 전에 죽었 어야 할 터인데, 우린 모두 80 안팎인데 장수하는 편이네요?” “그럼요. 여기가 의료시설도 좋고 문화시설이 좋아 그런 거 같아요.” “지금의 내 나이만큼 산 것도 감사하지요. 하지만 내가 오래 살아서 자식들에게 폐가 되면 안되지요. 자식들에게 말했어요, 내가 폐가 되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알려주면?” “방법을 찾아 야지요. 히 히!”
“늙어서 자식들 부담이 되어서는 안되죠.” 세번째 분이 시작했다. “나는 10년만 더 건강하게 살면 만족할 거예요.” “지금 연세 어떻게 되죠? 78살입니다.” “10년 더라면 88세!” “당연히 그때까지는 건강하게 사실 겁니다.” “그럼은 요.” “사는 동안 이웃에 도움이 되는 작은 봉사라도 하며 살고 싶어요.” “그래서 매번 선교 다니시고 교회 일 많이 하시고, 참 존경스럽습니다.”
네번째 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형님이 86세 호랑이 띠예요. 형님만큼 살면 해요. 더 살아서 몸이 아픈 것도 싫고, 애들에게 누가되고 싶지는 않아요.” “아픈 몸으로 요양원에 살면 무슨 보람이 있어요!” “병든 아내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친구들 옆에서 보니 사는 게 행복이 아니라 딱하고 불행이더라고요.” “부인들이 오늘 건강 한 것, 큰 축복이지요!” “늙어서 아내 남편 둘 다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해봐요. 자식들이며 돌봐야 하는 사람들을!”
“600불 가지고 미국에 와서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서 가게들이 여러 개인 건물을 샀어요.” 다섯 번째 분이 시작했다. “어디서요?” “뉴저지요.” “와, 대도시에서 그런 빌딩을 산 것은 성공이네요!” “2001년에 모기지를 다 갚았지요. 그런데, 2001 년 9월 11일에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리스트들의 비행기 공격으로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거예요!” “와, 나도 텔레비전에서 그 광경을 보고, 미국도 한 순간에 이렇게 망하나 했지요.” “쌍둥이 빌딩은 무너지고, 그 속에 있던 사람들, 비행기 속 사람들, 소방관, 빌딩 주변 사람들, 2700명 이상이 한 순간에 죽었어요. 내 생명도 순식간에 없어지고 죽을 수 있다고 직접 느꼈어요” “가까이서 봤으면 가공할 경험이었을 거예요. 그래서요?” “기다렸지요. 사회가 정상으로 회복되고, 몇 년 전에 건물을 팔았어요.” “고생하고 번 돈 다 쓰고 가시려면 100세까지 살아야 하겠네요?” “경제적 여유가 장수를 보장하나요? 나는 곁에서 목격했어요. 순식간에 생명도 빌딩도 없어지는 걸. 내 생명도 순식간에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나도 건강을 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살다가 갈 거예요.”
“10년만 더 살았으면 해요.”여섯 번째 분 차례였다. “그러면 몇 살이 되지요?” “90대지요. 요양원에 가서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산다 거나,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건강하게 사는 데까지 살았으면 해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거기에 공통점이 느껴졌다.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왔고, 평균 연령보다 더 살게 되어 감사하다. 그것은 자신이 성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은혜라는 점이다. 사는 동안 자식들에게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병고에 시달리지 않고 살고 싶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특히 이웃에게 작은 봉사라도 하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이 귀에 남는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한 영혼의 괴로움을 내가 덜어줄 수 있다면/한 아픔을 내가 덜어줄 수 있다면/죽어가는 로빈 새 한 마리를/그의 둥지에 올려 눕혀준다면/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끝까지 이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오래 살 수 있다면, 내 삶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