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대화가 시작되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기와 엄마는 태중에서부터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엄마는 뱃속의 아기를 생각하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혼잣말이 아닌 아기와 함께 대화하듯 말을 건네며 귀를 기울여 아기가 전하는 작은 신호들을 알아차리려고 애를 쓴다.
갓난 아이를 대할 땐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얼굴을 보았고, 기어 다닐 때는 따라 기어 다니며 눈을 맞추었고 두 발로 서 위태롭게 걷기 시작할 땐 아이의 손을 잡고 따라 걸었다. 어린 아이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어깨를 내리며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춰야 하니 내가 많이 작아져야 했다.
그렇게 서로 빤히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웃음은 절로 나왔고 그러다가 꼭 껴안아 주는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부모는 아이를 살피며 필요와 사랑을 주었으리라. 이런 걸 보면 몸을 가까이하여 서로의 상태를 알게 되는 것 또한 일종의 대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우리는 다양한 모습들로 대화를 나누며 살게 되는 것이니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가 있는 곳에서 그곳이 방구석에 놓인 책상 앞이든 밥을 먹고 있는 식탁이든 은밀히 볼일을 보는 공간에서 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공간과 세대를 초월한 대화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이야기를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때로는 무책임한 소통을 강요받고 때론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대화의 통로가 자유로운 세상인데 오히려 진솔한 마음의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와 대화가 안된다며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고 친구들 하고도 솔직한 고민이나 어려움은 나누지 못하고 있어 결국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여기며 외롭다는 감정과 함께 우울증세를 앓고 있는 청소년이 많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의 시작이고 과정이며 서로에 대한 관심이다.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대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든 놀이든 우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어떠한 관계들 속에서 하는 것이니 상대의 말을 듣는 것과 자신의 말하기가 잘 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MBTI 라는 성격유형 검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자신과 잘 맞는 유형과 맞지 않는 유형의 사람을 구별해 대화를 하는 방식도 그런 유형에 따라 변화를 줄 수 있어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데이터와 기술의 발전으로 대화를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나눌 수 있을 거라 말하는 이들이 과연 정말로 소통이 잘되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대화 란 무엇일까? 를 생각해 보았다.
일방적으로 내 말만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해서도 안된다. 소통이 잘 되는 대화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그렇고 대화를 끝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고 좋아야 한다. 그런 마음일 때 우리는 보통 대화가 통한다고들 말한다.
요즘처럼 말이 많은 사회가 있었을까?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냥 모조리 다 쏟아 내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자신을 드러내며 말을 한다. 말이 많은 세상에서 대화가 안된다고 말을 하니 이처럼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어떤 사람과는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통하는 구석이 있으면 대화가 잘 된다고도 말한다. 그러니 대화를 하기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불편한 말들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도 공허함으로 남는다면 함께 눈을 맞추고 소리를 조절하며 예의를 지키면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다. 공허함이 충만한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젊은 세대와의 대화를 위해서도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