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입막음 위해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합의금 건네
“내 머릿속의 단 한 가지 임무는 트럼프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그가 원하면 무엇이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성추문으로 얽힌 여성에게 ‘입막음용’ 합의금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핵심 증인이자 돈을 건넨 당사자인 마이클 코언이 13일 법정에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로 일했던 코언은 트럼프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중에 알려지지 않도록 ‘뒤처리’를 했던 과거에 대해 이날 증언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이날 검사의 심문에서 코언은 트럼프와 자신이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고 언급했다. 코언은 트럼프를 ‘보스’라고 부르곤 했고, 매일 하루에도 수차례 만났다. 두 사람의 업무 공간은 불과 15m 떨어져 있었다.
코언의 증언에 따르면 트럼프는 자신의 치부조차 그에게 털어놨다. 트럼프는 당시 코언에게 “앞으로 많은 여성이 나올 텐데 준비하라(There’s going to be a lot of women coming forward)”면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 여성 유권자들이 날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온갖 궂은일을 맡았던 코언은 2016년 대선 직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합의금을 건넸다. 그러나 코언이 연방 검찰에 기소돼 복역하면서 트럼프와 관계는 멀어졌고, 이후 ‘트럼프 저격수’로 돌아섰다.
트럼프는 대니얼스의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코언을 통해 13만 달러를 지급한 뒤 해당 비용을 법률 자문비인 것처럼 위장해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도어맨에 3만 달러 줘…혼외자 의혹 입막음도
이날 법정에선 코언이 또 다른 성추문과 관련해, 언론과 제보자에 돈을 주고 보도를 막았던 일도 조명됐다.
앞서 증인으로 출석한 타블로이드신문 ‘내셔널인콰이어러’의 모회사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페커는 트럼프 측에 불리한 이야기가 대중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당 정보의 독점 보도 권리를 사들인 뒤 이를 보도하지 않게 만든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내셔널인콰이어가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 도어맨에게도 3만 달러를 주고, 그가 주장한 트럼프의 혼외자 의혹 독점 보도권을 사들인 뒤 보도하지 않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5월13일 마이클 코언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함께 출석한 맨해튼 법정 후안 머천 판사 앞에서 수잔 호핑거 검사의 심문을 받고 있다. 로이터
코언은 이날 도어맨이 제기한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이야기가 새 나가지 않도록 확실히 해둬야 한다”라고 트럼프에게 조언한 뒤 페커와 협업해 해당 의혹이 보도되지 않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페커로부터 독점 보도권 계약서의 사본을 받은 뒤 트럼프에게 보여주면서 “일이 잘 처리되고 있다”라고 했고, 트럼프는 굉장히 고마워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배우 캐런 맥두걸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한때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코언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눈 대화 녹음파일도 공개됐다. 당시 내셔널인콰이어러는 맥두걸에게 15만 달러를 지급하고 독점보도 권리를 사들인 뒤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코언은 독점보도권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을 트럼프가 나중에 갚을 것이라는 점을 페커에게 증명하려고 이 대화를 녹음했다고 밝혔다.
이날 코언이 증언하는 동안 트럼프는 정면만 바라보거나 눈을 감은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는 재판이 끝나자 취재진 앞에서 “이것은 사기다”면서 “민주주의에 끔찍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에게는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마이클 코언이 13일 뉴욕 형사법원 출석을 위해 맨해튼 자택을 떠나고 있다. 로이터
트럼프 NYT조사 6개 경합주 중 5개 앞서
이처럼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는 대부분 경합주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3일 NYT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시에나대와 공동으로 지난달 28일~지난 9일 애리조나·조지아·미시간·네바다·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6개 경합주의 등록 유권자 409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위스콘신을 제외한 5개 주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앞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엔 6곳 모두 이겼지만, 현재는 인플레이션과 중동전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다른 주의 상황이 직전 선거와 같다면, 바이든은 최소 4곳의 경합주에서 이겨야 당선될 전망이다.
특히 바이든의 핵심 지지층으로 꼽혔던 청년층, 유색인종에서도 표심 이탈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는 18~29세 청년층, 히스패닉 유권자에게 동률의 지지를 얻었다. 흑인 유권자의 경우, 지난 대선에선 12%만이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20% 이상 지지했다. 이는 흑인 유권자의 공화당 후보에 대한 역대 지지 중 최대라고 NYT는 전했다.
NYT는 “이번 조사에서 유권자들이 미국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바이든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진 것이 확인되었다”며 “특히 경합주의 유권자의 경우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다”고 덧붙였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