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대 노인들, 건강·의료지식 부족 심각
간호·돌봄 서비스 이용 못해 ‘화’ 자초하기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모리 세인트 조셉 병원에서 일하는 김소미 간호사는 고혈압, 당뇨 등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만성질환을 제때 관리하지 못해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한인 노인을 자주 본다.
언어 장벽 때문에 한인이 운영하는 병원만 찾아 감기 환자가 카이로프랙틱과 같은 엉뚱한 곳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하면 에모리 존스크릭 병원의 서채희 간호사는 집에서 장바구니나 의류를 밟고 넘어져 골절을 입은 한인 노인이 적지않다고 전했다.
“미국 병원비가 무서워 아플 수도 없다”는 한탄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인들의 경제·사회적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오바마케어(ACA) 등으로 저소득층의 의료보험 문턱이 낮아졌음에도 불구, 적절한 병 관리를 받지 못하거나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해 사망하는 시니어들이 여전히 있다는 점은 한인사회의 의료 공백 문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김소미 간호사는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인 시니어들의 의료비 부담과 언어장벽 문제를 지적했다. 장채원 기자
이민자의 의료 문턱은 세대별로 차이가 크다. 2018년부터 조지아에서 간호 업무에 종사한 김 간호사는 “이민 1세대의 경우, 직계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회적 관계가 부족해 건강 관리에 있어 지지 기반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탓에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긴 채 일하는 고령층도 많다.
반면 젊은 세대는 다르다. 지역 기반 소셜미디어인 ‘넥스트도어’를 활용해 병원 정보를 찾는 등 온·오프라인 사교활동이 활발한 젊은 한인 이민자는 의료정보 공유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영유아를 돌보는 부부도 직장보험으로 예방접종을 보장받을 수 있어 소아과 진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김 간호사는 전했다.
고령층 의료 공백의 가장 큰 원인은 의료 지식의 부족이다. 조지아에서 44년째 일하고 있는 서 간호사는 “의료 교육 수준이 높은 미국 태생 환자와 달리, 한인 이민자의 경우 자신의 병명도 알지 못한 채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서 간호사가 일하는 존스크릭 병원은 교외 지역으로 낙상이나 실족으로 인한 골절, 뇌졸중, 심정지 등을 겪는 노인층이 환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애틀랜타는 은퇴도시로 인기가 높고 한인 고령자가 몰리고 있어 노년기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서 간호사는 “나이가 들면 층계 구조부터 방문의 설치 방법 등 주거환경도 고령층에 알맞게 바꿔야 한다”며 “생활 곳곳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터무니 없이 낮아, 늦은 치료로 장애를 갖게 되는 한인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애틀랜타 한인간호사협회 임원단들. 가운데가 에모리 존스크릭 병원의 서채희 간호사. 윤지아 기자
시장을 다녀와 바닥에 내려놓은 의류, 장바구니, 비닐봉지 등을 밟고 미끄러지거나 반려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구로 인해 집에 설치된 방문이 180도 열리지 않아 환자 긴급 이송이 늦어지는 경우도 태반이다. 작은 관심만 기울이면 예방할 수 있는 문제다.
가정 간호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만성 질병을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김 간호사는 “한 환자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질환인 심방세동을 앓고 있어 혈전 방지를 위해 항응고제를 처방받아 복용 중이었는데, 치매 증세로 항응고제를 수 차례 과다 복용해 뇌출혈로 사망한 경우가 있었다”며 안타까왔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함께 사는 가족 중 누구도 환자가 경증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해 발생한 사고였다.
한인사회의 의료보험 가입률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민정책연구소(MPI)의 2022년 한인 이민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인 이민자 중 무보험자 비율은 11%다. 미국 태생의 보험 미가입율 8%에 비해 높다. 공공 보험 가입률 역시 29%로, 전체 이민 인구(30%)에 비해 다소 낮았다.
김 간호사는 “오바마케어(ACA) 도입 후에도 무보험자가 많다는 것은 무보험 문제가 소득 수준이 아니라 정보 부족 탓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롱텀케어(LTC) 등 장기 요양 보험의 존재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서 간호사는 “의료보험이 없더라도 병원이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다”며 “다만 보험이 없어 전문적인 가정 간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 퇴원하더라도 병이 재발해 다시 입원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환자의 입원부터 퇴원까지 전 과정을 감독하는 관리자인 케이스 매니저가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과 협력해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내지만, 보험이 없으면 선택지가 극히 제한된다는 것이다.
로렌스빌에 있는 미선 헬스 서비스의 이미영 간호사는 “모든 연령층에 걸쳐 노후에 대비한 지식이 있어야 한인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며 “대형 종합 병원은 물론, 재활·요양병원, 가정 방문 간호, 호스피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의료 서비스를 잘 알아두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간호사는 이를 위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대형 현수막을 붙이거나, 교회를 통해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등의 오프라인 대면 홍보 방식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