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간병은 고강도 정신·육체적 노동
40~50대 숙련 간호인력 대거 현장 떠나
2세대 젊은층은 전문·미용 분야 더 선호
국제 간호사의 날을 기리는 5월을 맞아 인터뷰에 참여한 한인 간호사들은 시니어 간병을 두고 입을 모아 고강도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이라고 일컬었다.
김소미 간호사는 한국에서 5년의 간호 경력을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3년)를 거쳐 2018년부터 애틀랜타의 에모리 세인트 조셉 병원에서 일해왔다. 그녀는 한인 노인 간병의 어려움 중 하나로 환자의 ‘부적절한 인식’을 꼽았다.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간호부·간호원’ 시절에 머물러 있어 전문 의료인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을 노린 금융 범죄나 사기 행각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간병인에 대해 의심을 일삼는 환자도 적지 않다. 특히 치매 환자의 경우 의심과 피해 망상 증상 때문에 환자와 간병인 단 둘만 있는 상황이 간호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 간호사는 “가정에서 간병할 때는 환자 외 제3자가 함께 상주하는 것이 안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한인’이라는 소수계 정체성이 추가적인 업무 부담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로렌스빌 미선 헬스 서비스의 이미영 간호사는 “한인 간호사는 미국과 한국 양국에 대한 문화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 강점이지만, 이 점이 적지 않은 업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등 소수계 언어를 구사하는 간호사들은 언어장벽을 지닌 환자에게 치료 과정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부담을 추가로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애틀랜타 한인간호사협회원들이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있다.
에모리 병원 44년 경력의 서채희 간호사는 “한국을 떠난 지 오래돼 한국어가 불편하지만 병원 통역 서비스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의사-환자의 소통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1964년 제정된 연방법에 따라 모든 병원은 영어 능력이 제한된 환자에게 통역 서비스를 원격 또는 직접 제공해야 하지만, 병원에 비치된 통역 전용폰은 편리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김 간호사 역시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한인 간호사의 경우, 존댓말이 서툴 수 있는데 온전한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환자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한인 사회가 고령화되는 속도만큼이나 간호사의 세대 교체도 빠르다. 해외 간호사 파견 바람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이주한 간호사들은 이미 은퇴 연령을 훌쩍 넘겼다. 2022년 출범한 애틀랜타 한인간호사협회도 63명의 회원 중 20여명이 현장을 떠났다.
2022년 2월22일 애틀랜타 청담 식당에서 개최된 애틀랜타 한인간호사협회 창립총회 모습. 애틀랜타 한인간호사협회 제공
서 간호사는 “위험 부담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수준 때문에 많은 간호사들이 데이케어나 가정 간병 등의 사업체를 차려 병원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부족한 한인 간호 인력은 고스란히 남은 이들의 추가 부담으로 돌아온다. 김 간호사는 “일손 부족으로 환자들이 치료에 어려움을 겪을 때 간호사의 심적, 신체적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눈을 돌리는 간호사가 늘고 있지만, 한인 노인 간병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미국 간호사자격 시험을 주관하는 전국간호위원회인 NCSBN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계 시험 응시자는 3299명으로, 2022년 1817명에 비해 81.5% 늘었다. 외국인 응시자 규모로 필리핀과 인도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료인력이 대거 퇴직한 탓에 해외 인력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신규 간호사 시험 응시자의 31%가 외국에서 공부한 이들이다.
다만, 요즘 간호사 직종을 선택하는 젊은 한인들은 대학원 박사 과정을 거쳐 마취전문 간호사 또는 임상전문 간호사(NP)와 같은 전문 분야에 진출하거나 피부과 등 미용 분야에 많이 몰리는 추세다. 언어장벽이 있는 한인 시니어들의 간병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력이 공급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김 간호사는 “20여년 전 미국 간호사 붐이 불었을 때 오신 분들이 40~50대가 됐다”며 “가정 간호 전문성이 가장 높은 분들이 대거 현장을 떠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