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강 매니저 “민권운동을 다양한 인종으로 확장해야”
옷을 뺏고, 벗기고, 다시 입맛대로 입히는 과정은 유색인종 이주민을 둘러싼 혐오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다. 지금도 옷은 직업에 따라 기능적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계층과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시안 아메리칸’을 설명하는 옷은 무엇일까.
미국 서부 금광시대 광부의 질긴 작업복으로 처음 쓰인 ‘데님’ 소재를 들고 한인 4명을 포함한 12명의 예술가가 모였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경험한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한 결과가 각자의 청재킷 등판에 새겨졌다.
photo credit AAAF 아티비즘랩 재키 청(Jacky Cheng)
아시아계 미국인 권익증진 비영리단체인 아시안 아메리칸 어드보커시 펀드(AAAF) 산하 아티비즘(예술을 뜻하는 ‘Art’와 행동주의 ‘Activism’의 합성어) 연구소의 니콜 강(한국명 강소영) 매니저는 애틀랜타 다운타운 민권인권센터에서 열리는 ‘5월 아태계 미국인(AAPI) 문화유산의 달 기획 전시’의 일환으로 ‘정의의 스레드'(Threads of Justice)를 준비했다.
그녀는 16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데님이라는 가장 미국적인 배경에 우리의 이야기를 얹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2022년부터 아시아계 주요 사회 인물을 표현한 영유아용 컬러링북을 제작해 각 지역 학교에 배포하는 등 다양한 사회참여형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16일 화상 인터뷰에 응한 니콜 강 AAAF 아티비즘 매니저.
1870년대 어거스타 운하 확장 공사에 동원된 수백 명의 중국 출신 노동자들은 조지아주 최초의 아시아계 이주민이다. 노동자 ‘작업복’이 미국적인 동시에 이민자적인 이유다. 강 매니저는 “많은 작가들이 중첩된 인종적 정체성을 표현했다”며 “각자의 정의에 따라 ‘미국인’을 정의하는 실타래가 확장됨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국 전통문양의 중앙에 하회탈이 그려지는가 하면, 부산, 달맞이길(Moon Hill) 등의 단어가 적히기도 했다.
1994년 아시아 최초 여성 우주인이 된 일본의 무카이 치아키가 발랄한 만화풍 인물로 재탄생했으며 캄보디아에서 만들어진 의류와 필리핀 대나무 섬유로 만든 천이 꿰어졌다.
이렇게 표현된 두 개, 세 개의 중첩된 인종적 정체성의 흔적은 관람객은 물론 각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인식의 장을 열어준다.
‘정의의 스레드’ 전시에 참여한 개비 리 일러스트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AAAF 아티비즘랩 재키 청(Jacky Cheng)
6살에 조지아주로 이주한 1.5세대 한인 개비 리(한국명 이민영) 작가는 5년차 일러스트레이터이지만, 공동 작업은 처음이다.
그는 21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다른 아시아계 예술인들과 나의 독특한 인종 배경을 나누는 경험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예술을 통해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 사회에 큰 반향을 가져온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그가 만든 작품은 ‘까치.’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엄마와 아이가 조각보를 잇고 있다.
리 씨는 “이민 가정은 영어가 서툰 부모와 미국 문화에 흡수된 자녀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함께 천을 엮는 과정에서 엄마와 딸이 정신적으로 결합되는 것을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작품 의미를 해설했다.
photo credit AAAF 아티비즘랩 재키 청(Jacky Cheng)
조선시대 여성이 버려진 자투리 천을 활용해 보자기를 만드는 데 활용했던 조각보 기법은 언뜻 조화롭지 않아 보이는 조각들이 바둑판형으로 이어지며 리듬감과 균형을 이루는 게 특징이다. 아울러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별들 사이로 까치가 날아가며 이들 가족의 높은 희망을 보여준다.
photo credit AAAF 아티비즘랩 재키 청(Jacky Cheng)
강 매니저는 “남부 민권 운동은 흑백 차별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인종차별의 영향 아래 있는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로 논의를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작품은 민권인권센터에서 이달 말까지 전시되며, 내달 애틀랜타의 도심 순환 산책로인 벨트라인 야외 전시로 이어진다.
photo credit AAAF 아티비즘랩 재키 청(Jacky Cheng)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