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가장 많은 행사와 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5월 5일, 어릴 적 제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이날. 어린이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그날 몽땅 다 받아 내려고 했고 지쳐 쓰러져 잠들만큼 온 힘을 다해 놀았다. 이 날이 지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이라고 하루 종일 노래도 불렀다.
항상 바쁘게 일하시던 부모님도 그날은 어린이 대공원이나 창경궁으로 다섯 남매를 데리고 놀러가 주셨다. 엄마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김밥 싸는 걸 지켜보며 꽁 다리 하나씩 집어먹을 때부터 설레고 신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서는 다양한 장소와 행사에서 씩씩하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역동적인 미래를 꿈꾸는듯 활기찬 어린이들의 모습을 내보냈다. 그리고 꼭 아픈 아이들의 모습도 보여주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잊지 않도록 하였다. 그렇게 어린이날이 지나 5월 8일, 어버이날. 어린이날을 맘껏 누릴 수 있었으니 다가온 어버이날은 부모님께 정성을 다해 마음과 사랑을 표현해야 했다.
평소 하지 않던 사랑한다는 편지도 쓰고 꽃도 만들어 가슴에 달아 드리고 집안 청소도 거들어 보고 그동안 잘 키워 주신 은혜에 보답하듯 “나 실제 밤 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하고 부르면 마침내 엄마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고맙다고 하셨다.
옆에서 아버지는 그냥 웃으셨다. 고맙다고도 기분 좋다고도 안하시고 그냥 맛있게 식사를 하신 걸로 마음을 표현하신 것 같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5월 15일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선생님을 앞에 모시고 반 학생 모두가 목청껏 부르면 선생님과 우리가 같이 우는 날도 있었다.
어릴 적 나의 기억 속 5월은 대략 이런 일들의 연속이고 그렇게 서로 마음을 전하는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 기억과 추억이 또 다른 함성을 알게 된 건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희망과 감사의 노래 소리가 가득할 것 같던 5월에 또다른 커다란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광주의 금남로에서 그리고 젊음의 거리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뜨겁게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아침이슬’ 은 아름답고 따뜻한 노래가 아니었고 마치 목 놓아 외치는 절규와 투쟁의 소리 같았다.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 나는 왜 그곳에 없고 그들은 왜 그곳에 모여 그토록 크게 외치고 있는 걸까?
5월 18일 광주, 그날 그곳에선 무슨 일들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라 정책에 반대하는 폭군들에게 총을 들어 군대를 앞세워 제어하다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된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참으로 무심하고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광주 사람들을 무섭고 사나운 폭군이라는 말로 폄하하고 지역 감정을 부추겼으니 그 미안함을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외신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진 이 투쟁은 광주 시민들이 무력으로 권력을 쟁탈한 신군부로부터 국가를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목숨을 건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렇게 이해되기까지도 긴 시간이 흘러서야 가능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한 가슴으로 살아 냈을 지 짐작할 수도 없다. 무차별하게 폭군으로 몰아가며 총격을 가하는 국가 앞에서 광주 시민들은 얼마나 무섭고 화나고 억울했을까? 나라의 대통령이 바뀔 적 마다 그날의 이해와 해석은 달랐다.
여전히 우리는 많은 것을 모른 채 아니면 외면 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잊거나 왜곡하여 다른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은 현재를 살아도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개인도 그러한데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중요한 시대의 일들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고 폄하하여 기억한다면 미래를 바르게 만들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미안하지 않도록 알맞은 사과와 용서 그리고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약속하는 국가와 국민이 되어 한 마음으로 외치는 새로운 5월의 함성이 만들어 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