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슐리 이왈드 “내 삶에 미치는 국가 권력의 영향력 절감…이민자 정체성 이해하는 후보 뽑아야”
타일러 리 “언제나 나의 뿌리 잊지 않고 투표 참여…투표는 후보의 가치관을 지지하는 것”
애쉬윈 라마스와미 “개인적 성공보다는 사심없는 봉사로…부모 세대의 노력과 희생에 보답해야”
미국의 6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다섯 달 앞으로 다가왔다. 조지아주는 지난 3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통해 정당별 대진표를 마무리지었다.
4년만에 다시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아시아계 젊은 유권자들의 시선은 어떨까. 각자의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조지아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태생) 젊은이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국계 애슐리 이왈드(21)는 중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목적으로 1979년 도입한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미국에 입양됐다. 랴오닝성 선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입양을 통해 4살과 7살 두 차례 조지아주에서 새 가족을 찾았다.
이왈드는 “부모님은 나에게 삶의 기회를 주시고자 애써 병원 앞에 나를 두고 가셨다”며 “그들을 기억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오글소프 대학 정치학과 3학년으로 Z세대 정치 조직단체인 ‘내일의 유권자'(Voters of Tomorrow) 조지아 지부장을 맡고 있다.
애슐리 이왈드(Ashleigh Ewald)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은 도입 35년만인 2016년 폐지됐다. 이왈드는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국가 권력의 거대한 영향력을 태생부터 절감”했다. 그래서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다. 그는 ‘동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시하며, 정치란 ‘나와 닮은 대표자’를 뽑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는 올해 조지아를 비롯, 플로리다, 앨라배마 등 전국 20여개 주가 중국인을 겨냥해 제정한 외국인토지 구매제한법에 매우 비판적이다. “아시아계 외양을 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집을 사려면 부동산 중개인에게 적법한 이민 신분부터 제시하라는 거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안보를 빌미로 인종차별을 법제화하려는 시도들이 여전히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는 후보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인 2세인 타일러 리(17)는 피치트리릿지 고교 11학년이다. 그 역시 이민자의 자녀로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투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는 특정 후보에 투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가치에도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학교 학생이 총격에 희생된 뒤 지난 4년간 지역 정치인들과 총기 폭력 예방과 총기규제 캠페인을 벌여 왔다. 올해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다.
타일러 리
이 군은 이민 2세대의 정치력 신장에 관심이 많다. 그의 어머니는 미국 태생, 아버지는 한국 태생이다. 고등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2~3세대는 대학 진학률이 높으며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그는 “2020년 대선 이전까지 부모님은 평생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투표를 하신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한경준 테네시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이미 사회화를 마치고 이민을 온 부모 세대는 미국 내 선거에서 구체적 이슈에 기반한 정치적 선택이 낯설 수 있지만 자녀 세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Z세대도 적지 않다. 인도계 애쉬윈 라마스와미(24)는 조지아 상원의원직에 도전하기 위해 존스크릭 48지역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선되면 조지아주 최초의 Z세대 주 상원의원으로 주목을 끌 것이다.
그는 자신을 “90년대 초반 이민 온 남인도 출신 부모님 아래서 자란 힌두교인”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존스크릭 유권자의 30%가 아시아·태평양계(AAPI)라며 이민자 커뮤니티의 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마 의도를 밝혔다. 한인 2세가 주로 교회 부설 한국학교에 다니듯, 그는 존스크릭의 힌두교 사원의 주일학교에서 민족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애쉬윈 라마스와미
라마스와미는 “이제 이민사회가 생존을 넘어 ‘지역사회 환원’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던 그는 2020년 연방 정부에서 선거보안 전문가 일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공직자의 꿈을 키웠다.
그는 “정당 내 원칙과 정책 우선순위는 분명 있지만 오랜 시간을 들이더라도 모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부모 세대의 갖은 노력과 희생에 보답하는 길은 개인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힌두교에서 강조하는 ‘사심없는 봉사’를 의미하는 ‘세바'(seva)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아시아계 Z세대 정치 참여의 특징은 “정당 아닌 정책 이슈 지향적”
민주·공화 양극화 속 특정 이슈 집착하는 성향 강해
아시아계 연대 통해 불신 극복하고 자신감 쌓아야
아시안 증오 범죄를 규탄하는 뉴욕 집회. 사진 Unsplash
조지아주 아시아계 Z세대는 미국의 양극화된 정치 지형 속 어느 정당을 지지할까. 인터뷰에 응한 젊은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균질화된 집단으로 묶여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Z세대 정치 조직단체인 ‘내일의 유권자’ 조지아 지부장을 맡고 있는 애슐리 이왈드는 젊은 층이 ‘단일 이슈 유권자’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양당이 보여주는 각종 정치적 쟁점의 입장을 비교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의 단일 이슈만을 고려해 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투표 성향은 청년 유권자의 목소리를 다채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정치 세력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왈드는 “최근 Z세대는 가자지구 전쟁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군사지원책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주거복지, 기후위기, 공공 교육 등의 모든 정책을 뒷전으로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이슈가 다른 정책적 우선순위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에모리 대학학생들이 캠퍼스 내 야영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소셜미디어(SNS)로 휘발성이 높은 단편적 정보만 접하는 정치 참여 행태도 젊은 층을 ‘단일 이슈 유권자’로 만드는 하나의 원인이다. 이왈드는 “Z세대는 사회변화를 포용하는 가장 진보적 세대”라면서도 “의료 접근, 낙태권, LGBTQ 평등권 등 세부 문제에 천착하다 보니, 투표 용지에 있는 모든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유권자층이 강력하게 지지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점은 그동안 이들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높다. 타일러 리는 정치가 신뢰를 잃은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적 요인을 꼽았다.
그는 “부모의 아메리칸 드림 성공 공식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며 “Z세대는 30대가 돼서도 내집 마련에 실패한 채 대학 등록금 대출을 갚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주택 가격 급등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닥친 상황에서 정치를 통해 내 삶을 바꾸는 길은 요원해보일 수밖에 없다.
2023년 3월 20일 조지아주 의사당 밖에서 조지아 하원과 상원이 미성년자의 성 정체성 의료 치료를 금지한 조치에 대해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
정치에 대한 불신은 사회시스템 전반에 대한 무력감과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애쉬윈 라마스와미 존스크릭 48지역구 주 상원의원 후보는 “양극화를 부추기는 양당 체제 속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투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정치적 소외감은 역설적으로 정치 참여를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정치적으로 과소평가 돼온 아시아계 젊은층의 경우 서로가 정치사회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고,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정치적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라마스와미 후보는 “서로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의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재, 사진 /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