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닐 때면 펼쳐지는 풍경에 종달새처럼 연신 감탄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남편은 좋네! 하는 걸로 내 찬사에 동의한다는 듯 한마디 하면 끝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다저녁에 노을 보러 가자고 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뜬금없이 웬 노을? 노을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변해가는 모습이 더 많이 느껴져서다. 의아해하는 내게 캘리포니아의 해안에서 바라본 석양과 기다란 팜 트리의 풍경은 정말 최고라고 말하며 늦기 전에 얼른 나가자고 재촉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슴이 말랑말랑 해진 건지, 아님 숨었던 감성이 살아나 표현을 좀 더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감성적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 다른 대화가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반갑기도 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기 위해서 나갔던 기억은 많다. 새해 첫날에 새로운 시작의 희망과 함께 품에 안았던 여명의 풍경들은 익숙하다. 그랜드캐년의 이른 아침에 담요를 둘러쓰고 추위를 떨치며 보았던 아침도 좋았다. 하지만 오로지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서 함께 나갔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았다. 샌타모니카의 해변은 늘 사람들이 북적였고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우리는 간이 의자를 펼치고 나란히 앉았다. 평소와는 느낌이 색달랐다.
어느새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한낮의 뜨거웠던 태양이 해수면과 닿으며 그윽하고 평화로운 눈길을 보내왔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위로하는 듯했다. 물 위에 그려진 빛의 길을 따라서 뛰어가면 태양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깊은 계곡 사이에 걸린 다리처럼 물결 따라 노을빛은 흔들리며 손짓을 하고, 파도 위에 일렁이는 찬란한 빛들은 희망의 노래가 되어 울려왔다.
저녁은 신을 만나는 시간이고 노을은 신의 말씀 같다고 했던 어느 사상가의 말이 생각났다. 신은 어떤 말씀을 노을에 담았을까? 세상의 욕심과 헛된 꿈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비우는 연습을 하라고 했을 것 같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오늘 하루의 삶에 감사하라고 했을 것 같다.
태양은 수평선 뒤로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긴 여운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애간장을 태웠다. 선과 원이 만나는 시점부터 물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기까지 그 짧은 순간에 숱한 색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추억으로, 행복으로, 때론 눈물이 되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숱한 삶의 감정들을 품어주며 고요와 평화를 주고 있었다.
세도나에서 바라본 석양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돌산은 지는 해를 따라서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빛을 온몸으로 떠받고 있는 붉은 산의 자태가 너무 당당해 보여서 그 기운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품고 싶었다.
나지막한 건물과 자연 닮은 색의 마을 풍경은 저녁노을과 함께 최고의 정점을 찍고 있는 듯, 내게는 완벽한 작품으로 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장면들은 밤의 고요 속으로 사라졌지만 진한 여운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을 할 때면 예전과는 달리 해가 질 시간에 우리는 한쪽에 차를 세우고 잠시 숨을 멈췄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나이가 들수록 함께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그동안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삶의 어느 문턱을 보는 느낌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세월의 풍파를 잘 지나온 황혼의 나이에 완성된다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했다. 나의 노후도 깊고 그윽한 저녁노을 같은 빛으로 물들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 흰머리에 온화한 미소를 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노후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굴곡진 고비고비를 슬기롭게 잘 지나야 함은 물론이고 나를 잘 다스려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도 안다. 마지막까지 빛을 발하며 넘어가는 저녁노을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 자체가 의미 있을 거다. 내가 바라는 노후를 향해 노을 닮은 색을 내 색을 찾아본다. 잘 무르익은 황혼은 젊음이 부럽지 않은 멋스러움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