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의 ‘터부’ 중의 하나는 정신건강 문제이다. 많은 한인 남녀노소가 알게 모르게 가벼운 우울증부터 집중 재활치료까지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다. 특히 한국과 미국, 이중문화 사이에서 고생하는 2세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사회의 정신건강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없다. 한인들은 가족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논의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계 이민자(AAPI) 10-19세 청소년들에게 있어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가 자살이었다. 그런가하면 20-34세 아태계 청소년 사이에서는 자살이 두 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이다. 젊은 나이의 아시아계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정신건강(mental health)과 약물남용 문제(substance use)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오렌지 카운티 베트남계 이민사회의 사례는 한인들에게 있어도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는 미국에서 가장 큰 베트남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곳이다. 센서스에 따르면 이곳의 베트남계 인구는 20만 9천 명에 달하며, 카운티 인구의 6%가 베트남계다.
비영리단체 사우스랜드 통합서비스(Southland Integrated Services, 과거 오렌지카운티 베트남인회)의 트리샤 응우옌(Tricia Nguyen)는 “우리 협회는 1979년 베트남 전쟁 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돕기 위해 처음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 정신건강 상담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베트남계 이민자 세대간 정신적 격차가 매우 크다. 베트남 노년 1세대는 전쟁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힘든 삶을 보냈다. 1세대들은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2세대 자녀들에게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압박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웰빙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베트남계 1세대는 고립을, 2세대 청소년들은 불안, 우울증 및 자살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문화로 볼때 정신건강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베트남사회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신 건강을 공개적으로 논하기에는 트라우마가 존재했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인회는 1세대를 위해 노인 건강 강좌, 참전 용사 상담, 정신 재활 및 디지털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2세대들을 위해 예술과 공예 강좌, 건강한 수면과 식습관 교육, 소셜 미디어 사용 습관, 부모 자녀 의사소통 전략을 포함한 6주간의 청소년 웰빙 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메디케이드의 캘리포니아 버전인 메디캘(Medi-Cal) 보조금을 통해 실시되고 있다. 개빈 뉴섬 주지사의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마스터 플랜'(Master Plan for Kids)에 따라 47억 달러 규모의 ‘아동 및 청소년 행동 건강 이니셔티브'(Children and Youth Behavioral Health Initiative)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훔볼트 카운티의 비영리단체 디렉터인 제니퍼 올리펀트(Jennifer Oliphant)는 메디캘의 ‘내일을 위한 희망’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 집중재활 치료, 지역 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인력 훈련, 문화 워크숍, 동료 상담 및 언어 치료를 구축했다.
응우옌 CEO는 “행동 건강 프로그램을 확장하면서 베트남계 사회는 그러한 트라우마가 줄어들고 있다. 이제 부모들이 먼저 자녀를 위한 치료사나 검진을 요청한다”며 “정신 건강과 약물 남용에 대한 금기를 깨기는 쉽지 않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천천히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인사회에도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일부 비영리단체나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지만, 개인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는 정부의 지원 및 개입이 불가피한 셈이다. 오렌지 카운티 베트남계가 메디캘 등을 이용해 다양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처럼, 한인사회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인 대응을 생각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