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29.
‘미미미미레도/ 도시라라도미/ 라라라라솔파/ 파미레레미파~’
이 계이름만으로 어떤 곡의 첫 부분인지 금방 알아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 기타를 배워보려 했을 때, 가장 먼저 받아든 악보가 ‘로망스’였다. 이 곡은 원래 스페인 민요였다는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952년에 제작된 프랑스영화 ‘금지된 장난’에서 주제가로 쓰이면서다. 전쟁의 참상을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동심을 통해 보여준 영화에 로망스를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잔잔히 흐른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어린 뽈레뜨가 두려움에 떨면서 엄마와 미셸을 소리쳐 부를 때, 음악은 애절하게 소용돌이치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영화 ‘금지된 장난’에서 아이들이 했던 무덤을 만드는 놀이를 스웨덴 작가 울프 닐손은 〈All the Dear Little Animals〉라는 그림책에서 색다른 느낌으로 그려냈다.
지루한 여름날, 심심함을 달래던 화자 ‘나’와 에스테르는 죽은 벌 한 마리를 찾아내 장례식을 해 주기로 한다. 그들만의 빈터로 간 두 아이, 씩씩한 에스테르는 무덤을 만들고 겁은 많지만 글을 잘 쓰는 나는 죽은 벌을 위해 시를 짓는다. 아이들은 내친김에 죽은 동물들을 찾아 장례식을 치러 주기로 한다. 에스테르의 동생 푸테도 돕겠다고 나서고, 너무 어려서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푸테에게 죽음에 대해 설명하며 장례식에서 우는 일을 시킨다.
아이들은 덤불 속을 뒤져 죽은 쥐를 한 마리 발견하고 장례식을 치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장례 회사를 차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일거리를 늘린다. 친구의 햄스터, 아빠가 준 죽은 수탉, 냉장고에서 발견한 청어, 할머니가 준 쥐덫에 잡힌 쥐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고, 울고, 비석에 그림을 그리며 장례식을 한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으로 불쌍하게 죽은 동물들을 돕는다는 뿌듯함에 지루했던 여름이 재미있어진다.
“회사가 정말 엉망이야! 손님이라고는 작고 보잘것없는 동물뿐이니.”라는 에스테르의 불만에 아이들은 더 크고 무시무시한 시체를 구하려 로드킬 당한 동물을 찾아 나서고, 마침내 큰 토끼 한 마리를 찾아 장례식을 한다. 토끼에게 ‘페르디난드 악셀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베개에다가 담요까지 덮어 장례 상자에 담아 묻고는 아주 착한 일을 했다는 만족감에 취해있을 때,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던 지빠귀 한 마리가 베란다 창문에 꽝! 부딪쳐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본다.
좀 전까지 살아서 날아다니던 새의 죽음을 보게 된 ‘나’는 죽음이 삶의 한 부분임을 어렴풋이 깨달으며 손바닥 위에 새를 올려놓는다. 온기가 남은 새의 장례식에서 ‘삶이 가면 죽음이 오네. 너의 몸은 차가워지고 사방은 어두워지네. 어둠 속에서 넌 밝게 빛나리. 널 잊지 않으리.’하고 시를 읽으며 울음을 삼킨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음 날 우리는 딴 일을 하며 놀았어요. 완전히 다른 일을요.’라며 끝을 맺는다.
아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물으면, 영혼, 하늘나라, 병, 귀신, 무덤… 같은 말들을 떠올린다. 어른들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죽음을 너무 무겁고 어둡게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벼운 장난처럼 접근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 같다. 아무리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죽음을 설명하려고 쓴 그림책이라지만, 작은 동물들을 위한 장례식을 놀이, 돈벌이 같은 것으로 즐기다가 다음날부터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른 놀이를 한다니… 왠지 마음이 더 무겁고 불편했다.
세상에는 죽은 이를 보내는 방식이 참 다양한 걸로 안다. 슬픔 속에 조용히 보낼 수도 있고, 축제처럼 떠들썩하게 귀천을 축하하기도 하고,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도 흙에 묻는 토장, 불에 태우는 화장, 바람을 이용한 풍장, 물속에 넣는 수장, 독수리 같은 맹금에게 맡기는 조장 등의 방법과 여러 방법들을 결합하여 치르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산 자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준비하는 것은 삶을 되새겨보고 행복을 찾아가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