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많아져 ‘문화 대사’ 필요성 대두
“한국 학생들 먼저 도움 요청하기 꺼려해
한국 문화 이해해야 먼저 손내밀 수 있어”
제나 김(리치몬드힐 고등학교 12학년)양은 지난해 1월 21일 경기 안양시에서 조지아주 사바나로 이주했다. 현대자동차 주재원으로 5년간 미국에 체류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서다. 그는 “사바나는 처음 들어본 곳이라 불안하고 긴장됐다”며 “아무도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컸다”고 전했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일상생활 소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높은 언어적 장벽을 느낄 땐 어린 나이에 비교적 쉽게 영어를 익힌 초등학생 여동생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가 조지아 브라이언 카운티에 전기차 공장 메타플랜트(HMGMA) 건설을 본격화한 뒤, 지난 3년간 조지아 내 한국 기업은 150여개까지 늘어났다. 기업 진출과 함께 한인 주재원 가정도 늘자 지방 정부에서는 이들을 지역사회 일원으로 끌어안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 일환으로 고안된 교육 정책 중 하나가 연방정부가 지원한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USCB)의 풀브라이트-헤이즈 해외 연수 사업이다. 사바나 지역 고등학교 교사 4명이 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23일부터 한 달간 한국을 방문한다.
연수 교사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엘리자베스 로저스 클라크는 32년차 교사다. 현재 사바나에 있는 리치먼드힐 고등학교에서 물리학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2명의 한인 학생을 가르쳤다. 그는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콜럼버스 시의 군부대 소속이던 그의 아버지는 1960년대 한국 파병을 다녀왔다.
이 고등학교에는 현재 26명의 한인 학생이 재학 중이다. 1년 전 14명에서 크게 늘었다. 다음 학기를 앞두고 벌써 4명의 한인 학생이 입학 대기 중이다. 이중 절반 이상인 15명이 영어 외 모국어를 구사하는 이민자 출신의 영어학습생(ELL)으로 등록돼 있다.
사바나 지역 교육구는 총 110명의 한인 ELL가 등록돼 있다. 그는 “물리 수업 대부분은 수학적 계산이기에 언어적 장벽이 크지 않다”면서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네이버의 AI번역기인) 파파고를 이용한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풀브라이트-헤이즈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한국과 관련된 유용한 교육자료를 공유했다.
청소년기 거주 국가가 바뀌는 경험은 학업적 어려움 외에도 심리적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고등학교 연령대의 한인 청소년은 단기간만 체류하고 본국에 귀국하기보다는 현지 대학을 진학하려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 적응을 도울 필요성이 크다. 이때 가장 큰 걸림돌은 교사에 대한 학생의 심리적 거리감이다.
클라크 교사는 “한인 학생은 ‘특별 대우’를 기대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개인적 친분을 쌓기 전까지는 교사의 관심을 끌거나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먼저 손내밀지 않는 학생의 어려움을 제때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교육자가 필요하다.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23년 8월 시작된 풀브라이트-헤이즈 사업은 2년간 민간에서 ‘한국 문화 명예대사’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한 후아티나 바벳 빌레나-알바레즈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USCB) 교수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캘리포니아도, 뉴욕도 아니다”고 서두를 뗐다. 역사적으로 한국 문화에 익숙치 않은 남부 지역에 돌연 수 백명의 한국인이 이주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잠재적 오해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인은 이곳에 단지 20년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향후 200년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며 “그 뜻은 매 3~5년마다 새로운 한국 학생이 온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낯선 문화가 평화롭게 섞이기 위해선 ‘국경 없는’ 교육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바벳 교수는 풀브라이트-헤이즈 사업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현지인에게 한국을 설명하고, 한국인이 현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서로를 교육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바나 시의 최대 축제는 3월 열리는 ‘성 패트릭의 날’이다. 올해 현대자동차는 ″우리를 환영해 준 사바나 지역사회에 감사하다″는 슬로건과 함께 축제에 참가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지난해 9월부터 2개월간 조지아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지역에서 고등학교 교사, 대학 교수, 교육학과 대학생 등 프로젝트에 참여할 교육분야 전문가 12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격주 월요일에 만나 다양한 매체 자료를 공유하며 한국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 대북관계, 대입을 위한 경쟁적 사교육 시스템, 한국인간 스킨십 방법과 ‘눈치’ 문화, 매달 14일이 한국에서 갖는 의미 등 역사와 행정, 문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웠다. 오프라인 컨퍼런스 개최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의 시민 235명이 한국 문화 교육을 수강했다.
한국에 대한 꼼꼼한 ‘선행 학습’을 마친 교육 관계자 12명과 3명의 안내자 등 15명의 참가자는 내달 23일까지 한 달간 직접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한국 곳곳을 탐방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남산타워, 북촌 한옥마을을 거쳐 북한산 국립공원, 전쟁기념관을 방문한다. 부산 자갈치 시장과 해동 용궁사도 가본다.
세부 프로그램은 연방 교육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결정됐다. 바벳 교수는 “30일간 한국을 배운 이들은 지역에서 문화를 알리는 민간 대사로 활동하며 지역을 문화적으로 훈련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