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소련제 T-34 탱크 242대와 미그 전투기 211대를 앞세우고 전면 남침을 개시했다. 북괴의 총병력은 19만 8380여 명이었다. 이때 대한민국의 병력은 겨우 10만 4,666명이었다. 장갑차는 낡은 24대에 불과했고, 비행기는 연락용과 연습기 22대가 전부였다.
북괴군 총사령관 김일성은 남한의 온 국민에게 엄청난 죽음과 피해를 안겨다 주었다. 이를 잊을 수가 없어 만든 노래가 박두진 시인이 작사한 육이오의 노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육이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흐지부지해지고, 기념식마저 잊은 채로 지내오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턴가 ‘신(新) 육이오의 노래’가 등장했다. 작자는 심재방이라는 사람이다. 이 노래는 박두진의 노래와 비슷하면서도 판이하다. 먼저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의 ‘육이오의 노래’를 보자.
“1.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 2.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 3.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다음은 심재방의 ‘신 육이오의 노래’다.
“1.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의 산하가 두 동강 나던 날을 / 동포의 가슴에다 총칼을 들이대어 핏물 강이 되고 주검 산이 된 날을// 2.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동포 형제를 원수로 만든 그들을 / 겨레의 이름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 선열의 흘린 피 헛되지 않게끔 // 3.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번영 위해 / 민족의 공적과 싸우고 또 싸워서 통일의 그날이 기어이 오게 시리 // (후렴)이제야 이루리 그날의 숙원을 동포의 힘 모아 하나의 나라로 / 피의 원한 풀어 하나의 겨레로 이제야 이루리 한나라 한겨레 “
심재방 작사의 이 노래 1절을 보면 북괴의 남침 내용은 아예 없다. 그 대신 남북한이 서로 총칼을 들이대고 서로 죽여서 핏물 강을 이루었다는 정황만 설명하고 있다. 전쟁을 누가 일으켰으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동족상쟁’과 ‘동족상잔’이란 현상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의 원인 제공자이자 대한민국 전 국민의 원흉인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래서 ‘동족상쟁’과 ‘동족상잔’이란 말을 적어도 우린 사용해선 안 된다. 우리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비참한 전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디. 우린 피습의 희생자였다.
2절에서는 전쟁의 책임이 북한이 아니라 외세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외세는 미군과 유엔군을 두고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피습을 당하지 않았다면 미군과 유엔군이 이 땅에서 총을 들고 싸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3절은 민족의 공적과 싸워서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다. 여기서 민족의 공적 역시 미군과 유엔군이다.
민족 최대의 비극을 이렇게 왜곡하고 참혹한 전쟁의 책임이 있는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 노래는 박두진 시인의 노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적 상황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왜 심재방은 ‘신 육이오의 노래’를 작사하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현재 남아있는 육이오 세대는 전 국민의 2%도 안 된다고 본다.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생생한 전쟁의 아픈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