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쓰다가 석면에 노출 발병
두번째 승소 판례 법조계 주목
J&J “즉시 항소…결정 바뀔 것”
암 투병중인 한인 여성이 대형 제약사인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이하 J&J)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2억 달러 이상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배심원단은 J&J의 베이비파우더가 암을 유발했다는 원고 측 주장을 인정하고, 제조사인 J&J에 배상금 지급을 평결했다.
오리건주 멀트노마카운티 제4법원(담당 판사·캐서린 본테르 스테게)에 따르면 배심원단은 J&J가 악성 중피종 진단을 받은 이경(50·비버튼)씨에게 총 2억60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악성 중피종은 중피 세포에 생기는 종양으로 희소 암에 속한다.
배심원단은 무려 한 달간 이어진 본재판에서 결국 지난 3일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산정 금액은 징벌적 배상(2억 달러)과 손해 배상(6000만 달러)을 포함하고 있다.
이씨의 변호를 맡은 벤 애덤스 변호사(로펌 오마르 브랜햄 셜리)는 “이씨와 그의 가족은 J&J의 베이비파우더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이씨와 가족들은 배심원단이 정의를 회복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평결을 내린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소장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악성 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원고측은 “1974년생인 이씨는 평생 J&J가 만든 제품을 사용했으며 그 결과 석면에 계속 노출되면서 불치의 암 판정까지 받게 됐다”며 “사실상 태어날 때부터 J&J가 만든 베이비파우더의 석면을 흡입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J&J는 해당 베이비파우더가 발암 물질을 함유했다는 논란이 일자 지난 2020년부터 북미 지역에서의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법정에서의 공방은 치열했다. 소송 기록에 따르면 특히 피고인 J&J 측은 이씨가 어린 시절 나고 자란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근거로 베이비파우더로 인한 암 발병 주장을 부인했다.
J&J측 윌 스튜트 변호사는 “이씨는 한국 부산 지역 한 섬유 공장에서 불과 5㎞(약 3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며 석면에 노출되는 환경 가운데 자랐다”며 “이씨의 중피종 발병은 그러한 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베이비파우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었다. 이와 관련, 애덤스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씨가 살았던 부산 지역의 풍향 데이터까지 증거로 제시했다.
애덤스 변호사는 “그 지역의 풍향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씨가 살았던 곳은 섬유 공장에서 기체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유해 물질이 향하지 않는 곳”이라며 “설령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해도 증명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소송은 J&J의 베이비파우더로 인한 중피종 발병과 관련한 두 번째 평결이다. 지난해 시카고 지역 쿡 카운티 법원에서 진행된 중피종 발병 소송에서 당시 배심원단도 J&J가 테레사 가르시아에게 45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평결한 바 있다.
이번 평결은 J&J를 상대로 베이비파우더 및 화장품 발암 문제와 관련한 소송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결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원고측 로펌의 트레이 브랜햄 변호사는 “이번 재판 내내 J&J는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계속해서 피해자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번 판결은 악의적인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 J&J 측은 이번 평결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J&J 에릭 해스 부사장(소송 대응 부문)은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즉시 항소할 것이며 이번 결정이 뒤집힐 것으로 확신한다”며 “40년 이상 된 여러 의료 전문가들의 연구, 임상 증거 등이 우리의 안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암 투병중인 이씨는 건강 상태가 더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펌측 벨린 홀러스 홍보담당은 “이씨와 인터뷰가 가능한지를 알아보겠다”며 “현재 치료를 받고 있지만, 많이 아픈 상태”라고 말했다.
LA지사 장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