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끔 외부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서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다.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의 일들이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이 아프다.
올 3월에 편지 한통을 받았다. 내가 땅 위의 천국이라 부르는 몽고메리에서 100마일 동쪽, 조지아주와의 경계에 있는 Holy Trinity Shrine Retreat 피정센터를 관할하는 바바라 수녀님이 보낸 편지는 나에게 어두운 구름을 몰고왔다. 전세기에 북부에서 내려온 Thomas Judge신부님이 일구었던 성지가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그래도 지난 100년 이상을 잘 견뎌왔는데 이번에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운영진이었던 6 수녀님들이 나이가 들어 한사람한사람 떠나도 대신해서 새로 오는 수녀님은 없었고 변하는 사회 환경에 따라 운영에 온갖 애로를 겪는 것은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올해 연말까지 계획된 피정 스케줄은 지키고 내년부터 예약을 받지 않는다며 성지와 작별해야 하는 아쉬움을 나눈 바바라 수녀님이 준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정보는 1,200 에이커 천연의 숲을 가진 성지 Holy Trinity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암시였다. 그 편지를 받은 날부터 내 의식 깊숙이 출렁이는 안타까움이 진정되질 않는다. 그곳은 12년 전에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던 나를 잡아준 곳이다. 내 영육에 평안을 주었던, 내 삶의 중요한 장소로 든든한 영적 고향이 사라지다니.
그런데 이번 주말에 블루베리 농장에 갔다가 입구 한쪽에 농장을 판다는 광고판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몽고메리 근교 넓은 들판에 있는 Barber Berry Farm은 순박한 남부 자연환경을 가진 오르가닉 과일농장이다. 해마다 그 농장의 다양한 과일을 따면서 뜨거운 여름의 열정을 즐기는 곳이다.
농장주인인 켄과 아니다, 두 사람 다 나와 같은 공군 퇴역 군인들이라 특별한 애착이 있었다. 더구나 아니다는 오래전 우리가 현역으로 복무할 적에 그녀의 딸들과 내 딸이 같은 학교에 다녀서 알았다. 그녀는 퇴직하고 나서 온라인으로 만난 켄과 사귀다 결혼했다. 두사람이 각자의 집을 팔아 모은 돈으로 앨라배마 강줄기 한쪽의 공터를 사서 과일 농장을 오픈하자 켄을 만났다. 소탈한 성격의 켄은 언젠가 오클라호마에 있는 부대에 근무하며 사과농장에서 과일을 직접 딴 체험이 너무 좋아서 과일 농장을 만들어서 타인들에게 같은 기쁨을 체험하게 하고 싶어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은 농장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부부는 블랙베리, 블루베리, 무스카딘 포도 등을 잔뜩 심고 한쪽에는 청정수로 온실 채소를 재배하며 열심히 일하는 농부로 변신했다. 그리고 내가 소개한 조지아에 있는 한인 농장에서 감나무를 수십 그루 사서 보탰다. 해마다 블루베리, 무스카딘, 감을 구하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바람처럼 나누었다. 이번에 본 아니다와 켄은 작년과 달랐다. 세월은 나만 아니라 그들도 비켜가지 않았다. 왜 농장을 파느냐고 물었더니 힘이 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농장은 좋은 취미생활이었는데 이제는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서 내려놓기로 했단다. 이들은 애초부터 농장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좋아서 한 일이라 행복했고 농장서 올린 작은 수입은 바로 농장에 들어갔다.
손주와 블루베리를 2 갤런 따고 더위를 식히는데 켄은 내 손주에게 농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 이야기를 여러번 했다고 했다. 더위에도 불구하고 과일을 가장 많이 따는 여자인 나는 은근히 소문난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과일을 잔뜩 따서 나이든 지인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이제 그들은 이 땅에 없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은 농장을 찾아서 직접 수확할 수 있으니 요즘은 조금만 딴다 했더니 옆에서 7살 손주가 병원에 있는 지인에게 가져다 주자며 더 따자고 했다. 우리는 다시 화씨 95도 더운 들판으로 나섰다.
켄과 아니다가 떠나면 그들과 농장에 가진 푸근함도 사라질 터라 여간 서운하지 않다. 낯익고 정겨운 곳이 하나 더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흐르는 세월이 원망스럽다. 늘 그곳에 있으리라 믿었던 Holy Trinity Shrine Retreat이나 Barber Berry Farm. 오랫동안 두 곳에서 받았던 영육의 평안과 충만함, 그 축복에 감사하자고 마음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