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3
손을 들어 무아지경인 얼굴을 문지르자 검은 재가 선명한 손자국을 남겼다. 주인공들은 알수 없는 문자들을 얼굴에 빼곡히 적은 괴기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섬뜩한 음향과 강렬한 영상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영화 [파묘]의 한 장면이다.
파묘는 동양 철학과 토속적인 주술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영화적인 몰입도를 높인 오컬트 장르의 영화다. 감독은(장재현) 친절하게도 6개의 소제목으로 영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크게 전반 3부와 후반 3부의 내용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둘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많은 해석과 이야기 거리로 인터넷을 달궜던 영화다.
전반의 3부는 음양오행, 이름 없는 묘, 혼령으로 나뉘어 진다. 짐작대로 이름없는 묘에서 나온 혼령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원인을 모르는 병을 3대에 걸쳐 앓고 있는 의뢰인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부자다. 그는 견디다 못해 유명한 무당 화림(김고은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화림은 의뢰인을 대뜸 ‘그냥 부자’ 라고 부른다. ‘묫바람이네’ 하는 화림의 말은 동료인 봉길(이도현 분), 지관인 상덕(최민식 분)과 장의사인 연근(유해진 분)으로 이어지며 네사람은 한팀이 되어 파묘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이 찾은 의뢰인 부친의 묫자리는 이상하게도 악지 중에 악지였다. 그들이 왜 맥락 없는 ‘그냥 부자’ 인지에 대한 숨겨진 원인의 한 자락이 서서히 드러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 영화에서의 명장면은 악지에서 파묘를 무사히 하기 위한 대살굿 장면이다. 너무도 강렬해서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다. 배우 김고은은 이장면을 위해 실제 무당에게 사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마치 진짜 무당이 빙의한 듯한 그녀의 신들린 몸놀림과 표정, 돼지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눈에 선하다.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영화는 반전을 꾀한다.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장된다. 후반 3부는 동티, 도깨비 불, 쇠말뚝으로 전개된다. 파묘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친일 매국을 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거기에 얽힌 일본의 한국 말살정책과 연결된다. 토속신앙을 근간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이상적인 애국심 차원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색다른 이야기의 전개는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감독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전반부를 유심히 보면 후반부를 위한 많은 복선을 찾을 수 있다. 이름대신 좌표가 새겨진 묘석, 도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뾰족한 도구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떡밥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라는 의뢰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이상한 죽음의 뒤에는 ‘오니’ 라는 일본 요괴가 등장한다. 친일파와 연결된 일본 귀신의 등장은 자연스럽다고 할수도 있지만 한일 귀신 대결전 같이 뜬금없어 보이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어 보인다.
파묘 라는 말은 과거의 행적을 담고 있는 말이다.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미래가 영향을 받는다는 과학적이면서도 무속적인 색채가 강한 단어다. 우리는 과거 원치 않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도 어린 시절에 들었던 쇠말뚝 이야기가 뚜렷이 남아 있다. 인왕산 어디엔가 우리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일본인 이야기를 듣고 흥분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먼 기억으로 남아 있던 이야기가 21세기 한 감독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애국심으로 인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영화의 흐름 한복판을 끊은 전후반의 관계에 더 많은 초점을 두었다. 떡밥을 잘 따라 온 사람들은 점점 밀도있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후한 점수를 주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맥락을 거스른 뜬금없는 전개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두 관점의 비평들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나라 관객들의 높은 대중 지성을 보았다. 애국심이라는 자칫 빠지기 쉬운 늪에서 벗어나 객관적 평가를 하고 있는 집단 지성을 본 것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영화가 인정받고 K 문화의 붐을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의 저력은 어느새 성장한 우리의 안목이었다. 앞으로 또 어떤 영화로 우리의 안방을 떠들썩하게 할 지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