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엄마가 보낸 것 받았니?” “받았어요.” “우리 집에도 많이 있는데 왜 보냈어요?” “고양이 털이 많이 빠지는 것 같더라. 의자 옆이나 탁자 위 여기저기 손 닿는 데 두고 쓰라고…”
물건을 받고 전화 한 통 없는 딸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만도 한데, 받았다는 문자라도 해주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런 마음까지 이젠 미안한 생각이 든다.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흉터 위에 남아있는 딱지 마냥 떼면 다시 상처가 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 인지도 모르겠다.
딸아이가 혹독한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였다. 한국에 혼자 한 달 정도 다녀올 일이 있어서 집을 비웠던 적이 있다. 돌아왔을 때 한여름 더위에도 평소와 다른 아이의 옷차림과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내가 없는 사이에 몸에 문신을 한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코에 피어싱까지 했다.
어느 날부터 관심을 많이 보이며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내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아이다. 관심을 보일 때마다 나는 교도소에 가면 온통 문신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과 함께 타투에 대해 내 부정적인 시각들을 늘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말을 잘 들어주던 아이가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저질렀다는 게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생각나는 대로 질책인지 하소연인지도 모를 말들을 아이를 향해 쏟아부었다. 그리고 방에 붙어 있던 그림들과 포스터를 다 뜯어서 쓰레기 통에 넣어버렸다. 그건 분명 돌이킬 수 없는 폭언이었고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믿음과 기대가 한꺼번에 사라짐과 동시에 밀려오는 딸에 대한 배반감으로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그 원망의 화살은 순식간에 나 자신을 향해 심장 깊이 파고들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썼지만 현명하고 지혜롭지는 못했던 건 아닌지, 내가 서툴기만 한 엄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아 슬펐다.
성장통을 앓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찌할지 몰라 애쓰던 짧지 않은 시간들이 한순간에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부터 긴 시간 동안 딸아이는 내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어떠한 반항도 없었지만 무관심한 대응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가지 않겠다는 대학을 부모 된 욕심으로 밀어붙여서 보냈더니 결국 말없이 중퇴를 해버렸다. 아이와 타협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으로 노력도 했지만 매번 틈만 더 벌어질 뿐이었다. 내 보호막 속에 품으려고만 애썼던 건 아닌지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때는 내 삶의 모든 것들이 슬픔의 큰 늪에 빠진 것 같았다.
아이에게 향했던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엄마의 욕심과 집착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숨길 수 없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은 나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지난 일이지만 어느 날 나는 용기내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엄마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며 이해한다고 말하는 아이의 깊은 마음에 감사했다.
긴 시간,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인내하며 노력했던 딸은 이제 타투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감사하다. 욕심부리지 않고 심플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지금도 내가 배워야 할 모습이다. 아이와 나는 같은 성장통을 겪으며 지나온 것 같다. 내게 준 소중한 시간과 기회들을 아쉽게도 잃어버리고 나서야 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잃어버리는 시간들이 많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니까 가볍게 지나치는 실수도 여전히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하게 얻은 가르침을 기억하며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나온 날들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들이었고, 가르침이었고, 배움이었으며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