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오랫동안 몽고메리에 살며 안면이 있는 한 한인 여인을 만났다. 지난달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줬고 곧 이곳을 떠난다고 했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밥을 같이 먹자고 한식당으로 그녀를 모셔갔다.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그녀는 놀랍게도 내 상상을 건너뛴 전세기의 여인이었고 그녀의 삶에는 모국의 과거상처가 점철되어 있었다.
“나 죽기 전에 장충동에 있는 내 어릴 적 집을 꼭 되찾고 싶어요.” 해방된 후 시골에 있던 농토를 판 돈으로 아버지가 샀다는 장충동집은 잠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던 집이다. 부모와 5남매가 화목하게 많은 추억을 만들며 살았던 그 집에 그녀에게는 아버지와 연관된 애틋한 기억이 있다. 집 앞에 훤한 대로가 있어서 멀리서 퇴근해 오던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린시절은 언제나 즐거웠다. 지금 그녀는 그때의 안정감과 푸근함이 그리운 것이다.
한국전이 일어나고, 아버지는 이북으로 납치되어 갔고 서울대학생이던 큰오빠는 군에 입대했다가 전사했다. 온 식구가 피난길에 뿔뿔이 흩어지며 긴 악몽을 꾼 그때, 그녀는 겨우 6살이었다. 그리고 전후의 혼돈속에서 남은 식구들은 생존에 급급했다. 장충동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대면 몇 살 위인 언니는 이제는 그 집에 갈수가 없으니 잊으라고 달랬다. 상황을 모르고 울면서 방황하던 성장기를 보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6.25 전사 학생들 추모식에 참석해서 큰오빠의 흔적을 더듬으며 만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장충동집 이야기를 하고 찾고 싶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선뜻 부탁하지 못한 것은 그녀는 그 집에 관한 어떤 서류나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고 중매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다. 잠시 뉴올린스에서 간호사로 일했지만 바로 전업주부가 되어서 어려서 배운대로 남편을 섬기고 아이들 돌보는 현모양처로 살았다. 일상의 모든 일은 남편이 관리했고 그녀는 그저 남편의 결정과 의사에 따르는 그림자였다. 아이들이 성장해 떠나자 남편과 둘이서 오붓하게 살았다. 일편단심 한 남자에게 헌신하고 한 남자에게만 의지하고 살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정작 자신에게는 친절하지 못했고 세상에 등돌리고 산 세월이 반세기가 지나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카톡이 그녀에게 세상의 문을 열어줘서 그녀는 한국의 옛 지인들과 다시 연결됐다. 그리고 받은 좋은 정보나 글을 퍼 나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녀에게 제발 나한테는 퍼 나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나면 그녀는 다시 계속하길 번복해서 그녀를 외면했었다. 그러다가 올 봄에 우연히 한 가게에서 그녀를 봤을 적에 그녀는 나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옆에 선 그녀의 남편도 나를 낯설어 했다. 오래전 이곳에서 그가 한글학교의 교장이었을 적에 나는 선생이었다.
별로 아프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외톨이가 됐다. 두 아들은 북부에 산다. 그동안 한인회나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가까이 사귄 친구도 없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 본적이 없고 요즘은 운전도 못한다. 집에 갇혀 지내며 그녀가 한 일은 유년기 시절,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장충동집의 추억에 멈춘 그녀는 어린 눈으로 본 전쟁의 참상에 가족의 변화사를 아파했다. 5남매의 막내로 귀염 받다가 전쟁통에 풍지박산이 된 가족은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 서럽도록 아픈 기억으로 남아서 그녀의 평생을 억눌렀고 이제는 무력한 삶을 잡고있다.
홀가분하게 한국을 방문해서 친지들을 만나고 또 세상 두루두루 구경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형제자매들은 다 세상을 떠났고 그 자손들은 낯설고 모국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어디로든 혼자서 가 본적이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그녀를 부추겼지만 그녀는 두려워했다.
노약한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으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아파트의 방을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바꾸고 서둘러 엄마를 북부로 모셔갔다. 30대 초의 독신 아들은 남편이 아니다. 넓은 집에서 아래위 다니며 살던 그녀는 제한된 공간에 머문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가 나에게 다시 퍼 나르는 카톡을 받으며 아픈 역사의 희생자였던 그녀의 노후가 잔인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