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제조는 과학실험이자 역사 공부”
양조장은 카페·술집 겸한 커뮤니티 공간
독점적 한국 소주 시장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참이슬(진로), 처음처럼(롯데주류) 등 대기업 소주의 일률적인 맛에 질린 젊은이들이 직접 술을 빚고 있다. 한식 산업은 성장하는데 음주 문화는 50년 전 그대로인 현실에 이민 2세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조지아주 도라빌의 민화 스피릿(2421 Van Fleet Cir)에 도착하면 빨강 파랑 한복을 입고 까만 머리를 땋은 여성이 그려진 대형 벽화 ‘고요한 아침'(Morning Calm)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워싱턴 DC의 한인 2세 예술가 줄리아 천(한국명 천선아)이 “조지아 한인 이민 역사를 기리기 위해” 그린 이 벽화는 매장 한 면을 모두 채우며 이곳이 조지아 이민사회 고장으로서 갖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도라빌에서 40년간 자라온 제임스 김 대표는 9월부터 막걸리와 소주를 전통 방식으로 제조해 판매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카페 겸 술집인 민화스피릿은 커뮤니티 복합공간으로 기능할 것”이라며 “다양한 아시아계 문화행사 대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업 준비 중인 도라빌 ‘민화 스피릿’. 줄리아 천 예술가의 전통 민화풍 벽화로 외벽을 단장했다.
김 대표와 중학 동창인 대만계 밍 한 청씨는 둘 다 조지아텍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이들에게 전통 증류식 소주 제조는 항아리에서 일어나는 “대형 과학 실험”이었다. 원하는 맛을 얻을 때까지 쌀을 발효하는 과정은 마치 까다로운 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았다. 이를 위해 거제도 둔덕면에서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하는 삼촌의 레시피를 받아냈다. 3년의 연구 끝에 2021년 얻게된 방정식 해답은 “조지아의 샘물, 아칸소의 쌀, 한국의 누룩”이다. 알코올의 독한 맛을 가리기 위해 감미료를 섞는 대기업의 희석식 소주와 달리, 인공첨가물을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 방식의 소주를 만드는 것은 과학인 동시에 역사 공부이기도 하다. 밍 대표는 “수백년 동안 각 가정에서 만들어 마시던 전통주를 다시 만들어 판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민화 스피릿은 도깨비와 용 두 가지 소주를 만들어 작년부터 주 전역 30개 소매점에 납품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먼저 지역사회를 설득하는 일이 필요했다.
식당에 방문해 소주를 다양한 칵테일로 음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는 김 대표는 “소주를 만드는 개인 양조장은 전국 2~3개에 불과하다”며 “4~5달러 값싼 소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진 전통소주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민화 스피릿은 ‘노포'(老鋪·오래된 가게)가 될 수 있을까. 이들의 첫 목표는 집이나 직장을 벗어나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제3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넓은 매장을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활용해 젊은 한인 2세 사업가를 키워내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낮에는 포스턴 커피(조슈아 오)가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애틀랜타 팝업 식당 간지(박준)가 안주를 요리할 계획이다. 밍 대표는 “한인 누구나 자신의 책과 그림, 음식을 들고 와 무료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언젠가 그들이 졸업해 자신의 독립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돕고자 한다”고 전했다.
취재, 사진 /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