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면서 합계출산율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자녀 양육에 대한 비용과 기대치가 높아진 게 젊은 세대가 아이를 가지는 것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질병예방통제센터(CDC)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2013년 기준 1.62명으로 전년보다 2% 하락하며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2022년 기준 1.51명)을 웃돌고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2013년 기준 0.72명)과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지만, 출산율 하락이 지속되면서 미국에서도 저출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로, 통상 2.1명이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WSJ은 텍사스대의 인구통계학자 딘 스피어스의 분석을 인용, 평생 자녀를 갖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 게 35∼44세 여성 연령대 평균 출산율 감소 현상의 3분의 2를 설명한다고 소개했다.
과거보다 출산 연령대가 높아지거나 이전보다 아이를 적게 낳아서라기보다는 아이를 아예 낳지 않는 여성이 늘어난 게 최근 저출생 현상의 주된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출산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며 여성의 출산이 시기가 미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22년 한 해 아이를 출산한 미국 여성의 80%는 35세 미만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의 캐런 벤저민 구조 캐롤라이나인구센터 국장은 “일부는 여전히 아이를 가지고 있지만, 전반적인 출산율 하락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WSJ은 또 비영리단체인 애스펜 이코노믹 스트레티지그룹의 분석을 인용, 35∼44세 여성이 아이를 갖지 않는 현상이 인종과 소득 수준, 고용 상황, 지역, 교육 수준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인구통계학자들이 밀레니얼 세대의 자녀 양육관 변화에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베스 데이비스(42)는 “지금 내 삶의 활력을 망치고 싶지 않다. 특히 내게 100% 의존해야 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관념을 설명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18∼49세 성인 중 자녀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답한 비중은 2018년 37%에서 2021년 49%로 치솟았다.
아나스타샤 버그와 레이철 와이즈먼은 최근 낸 공동 저작 ‘자녀란 무엇인가’에서 과거엔 자녀 양육에 대한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양육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젊은 세대는 자녀를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개인적·직업적 야망과 비교했을 때 자녀 양육에 대한 투자가 값어치 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기본 비용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려는 욕구가 늘어난 게 젊은 세대의 양육에 대한 부담을 늘리고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스콧 윈십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 가정이 미취학 아동에 지출하는 비용은 1995년에서 2003년 4배로 상승했는데, 이 가운데 실제 물가 상승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 요인은 부모들이 더 높은 질과 양의 양육 환경을 선택한 데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릴랜드대에서 아동과 가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멜리사 키니는 “사람들은 양육비가 더 비싸졌다고 얘기하지만, 양육비 증가의 많은 부분은 부모들이 양육에 더욱 집중하면서 그에 따라 지출을 늘린 데 기인한다”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