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수많은 혼잣말을 한다. 혼잣말은 생각 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소리 내어 말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음성으로 내뱉는 혼잣말은 에너지가 더 강해서인지 기억도 잘 된다.
자동차를 타고 어느 만큼 가다가 차고문을 내렸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한 번은 여행을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들어서는데 차고문을 내리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여행 내내 불쑥불쑥 떠오를 불안보다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확인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차고문이 잘 닫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볼 일 보고 집에 돌아왔는데 차고문이 열려 있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차고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에 ‘닫았다!’ 고 소리를 내어 혼잣말을 한다. 이 말을 했다는 자체가 행동이 완결되었다는 신호를 뇌에 전달하고 차고문과 관련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어느 날 이웃들과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자주 사용하는 혼잣말을 너도나도 끄집어 내었다. 혼잣말을 하는 사례가 펼쳐질 때마다 수긍하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맞장구를 치거나 박수를 치며 웃거나 비슷한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표정을 보였다.
A는 애완견에게 질문 형식으로 혼잣말을 퍼붓는다고 했다. ‘아프니? 좋아? 맛있어? 나갈까?’ 개가 사람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훈련된 반응이 보이면 기쁘기도 할 터이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감정을 순화하거나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B는 무생물에게 말을 걸며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있다. 부엌에 가서 냄비를 찾으면서 ‘냄비가 어디 있지?’라고 묻는다. ‘오, 너 여기 있구나!’ 냄비를 마주하고 다시 혼잣말을 건넨다. 혹 냄비를 찾다가 안 보이면 ‘주님, 그게 어디 있죠?’ 라고 신에게도 말을 건다. 생각을 정리해서 냄비 있는 장소를 기억하는데 도움을 주는 혼잣말이다.
혼잣말의 사례는 그뿐 아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은 손님을 앞에 두고 계산하다가 ‘돈 받았나?’ 혹은 ‘이거 얼마였지?’ 할 때가 있단다. 그러면 물건을 들어서 가격표를 다시 확인한다. 이것은 상황을 얼른 환기시켜서 대처를 잘 하려는 혼잣말이다. 또, 어떤 이는 ‘잘 해보자!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지?’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혼잣말을 맘속에서 되뇐다고 말을 보탰다.
세바시에 출연한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은 혼잣말이 상대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경우는 실제 상황에서도 강요하고 조정하려는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건강한 혼잣말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건강하다는 의미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태도다. 우리들의 혼잣말은 자신을 살펴서 이야깃거리로 내놓고 함께 웃을 수 있으니 꽤 건강한 혼잣말 아닌가 싶다. 서로 동질감도 느끼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대화로 나아가고 있다.
C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C는 평생 동안 실수한 것 가운데 하나가 남편과 만나서 결혼한 것이라고 이웃들 앞에서 말했다. 그의 남편이 곁에서 듣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C가 혼잣말로 정리한 생각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심각한 선언을 듣고도 뒤따를 이야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하루는 이 부부가 말다툼을 했단다. C의 남편은 가출을 했다. C는 날이 어두워지자 남편에게 ‘나 무서워. 얼른 들어와’ 라고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부터 C의 남편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편은 월마트에 가서 빈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며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갔다. 남편이 밤늦게 집에 도착해보니 C가 대문 앞에 앉아서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남편의 혼잣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오! 감탄했다. 70대 중반의 이 부부는 서로 츤데레다. 츤데레는 상대방에게 겉으로는 엄격하지만 속마음은 애정이 넘치는 사람을 일컫는 요즘 말이다.
혼잣말이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혼잣말을 꺼내 놓을 때마다 동의와 지지가 담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임이 끝나도 대화의 여운이 자꾸 미소 짓게 한다. 고독을 즐기며 혼잣말 연습하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