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싫지 않지만 한국이 하는 일은 싫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남동쪽으로 3시간 반을 달려 블록 카운티의 작은 농촌 마을 브룩렛(Brooklet)에 도착했다. 1500여명에 불과한 마을 주민은 99.3%가 시민권자이며 80%가 백인이다. 피칸과 면화, 비달리아 양파를 자부심으로 삼는 농민들이 최근 때아닌 ‘물 공부’에 돌입했다. 차량으로 25분 거리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HMGMA)가 수자원 보전을 위해 취수 제한을 받는 공장 소재지 브라이언 카운티가 아닌 이곳 블록 카운티에서 지하수를 뽑아 용수로 사용할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13일 오후 6시 300여명이 넘는 주민이 사우스이스트 블록고등학교에서 열린 조지아주 환경보호국(EPD) 주최 공청회에 모였다. 다음달로 예정된 메타플랜트 급수전 개발 최종 허가 이전 마지막 공청회다. 백발의 노년 주민들로 가득찬 학교 강당에는 안전 사고를 우려해 셰리프 경관이 5명 배치됐다. 참석자 중 14명이 사전 신청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가된 공개발언 기회를 얻었다.
메타플랜트 급수전 개발 관련 공청회장으로 입장하는 주민들.
이날 주 정부는 웨이 징 수질학자와 크리스틴 보우 지질학 보조원 등 ‘기술적 지식’에 밝은 과학자를 파견해 1시간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주민 설득에 나섰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하던 공청회는 “블록-브라이언 카운티 경계선 반경 5마일 이내 거주자만 최대 19인치의 지하수 수위 저하를 겪을 것”이라는 대목에서 큰 야유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출처를 밝혀라”, “1970년대 지어진 상수도관도 있다. 각 농지의 우물 연식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다를 것”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최종 공청회임에도 블록 카운티에 시추될 최대 6곳 급수전의 구체적 위치가 공개되지 않아 “그곳(새 급수전)이 어디냐”는 외침이 이어졌다. 결국 진행자가 시설 대관 시간이 제한돼 있음을 주지시키고서야 반발이 잦아들었다.
3시간 넘게 이어진 공청회에서 만난 주민들은 일제히 ‘소통 부족’과 행정기관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다. 캐나다인으로 2003년 이주해 21년간 농사를 짓고 있다는 행크 버니씨는 “수백 명의 주민이 각자의 의문점을 안고 공청회에 왔다”며 “매일 662만 갤런의 물을 뽑아쓰면 5년 뒤 우리 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현대차와 정부 모두 확신에 차 있는듯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15년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제임스 레이차드 조지아서던대학 수자원학 교수 등 몇몇 학자는 지난 2월 과도한 지하수 취수로 주변 지반이 불안해지면 도로 함몰(싱크홀)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대차 공청회 참석자 행크 버니
또 신규 급수전 영향권 15마일 내 농지를 남편과 소유하고 있는 리사 씨는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급수전 시추 계획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며 “일방적으로 개발을 추진하면서 우리를 허수아비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현대차 공청회 참석자 리사씨
주민 리샤 네빌씨 역시 “공장 설립 계획이 발표될 때 (급수전 개발 결정을) 알렸더라면 주민들은 이토록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껏 없었던 대규모 개발이 최초로 진행되고 있는데 대다수 주민은 개발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청회 참석자 리샤 네빌
지하수 시추 허가를 발급한 주정부 외 공업 용수를 공급받는 현대차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도 컸다. 신규 급수전 영향권 5마일 내에서 농사를 짓는 해리스 해럴 씨는 “정부가 현대 측에 제공한 20억 달러의 세금 혜택은 우리가 낸 돈이고, 농민들에게 급수전 개발 보상안으로 제시한 돈 역시 현대차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닌 우리 세금”이라며 “지역 주민들에게서 헤택을 받고 있는 현대차가 오히려 환경 파괴의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사바나 경제개발청(SEDA)은 이날 여론을 의식한듯 개발청과 현대 메타플랜트가 블록-브라이언 카운티 급수전 피해 보상 기금에 각 25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 총 기금액이 100만 달러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현대차 공청회 참석자 해리스 해럴
비람 채프먼씨는 “공장을 어디 지을지 결정하기 전 필요한 땅과 전기, 노동자 규모 등을 모두 계획했지만, 용수를 어떻게 조달할지 여부는 잊었다는 말을 믿으라는 거냐”며 “공장 가동에 막대한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로켓 과학’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세계를 먹여살리는 미국 농민을 하대하고, 평균 6세대를 이어온 가족 농업의 토대를 망가뜨려선 안된다”고 호소했다.
현대차 공청회 참석자 비람 채프먼
잉글랜드 이민자 후손으로 8대째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한 주민은 회중 가운데 유일한 아시안인 기자를 현대차 관계자로 착각하고 “당신은 물을 살 여유가 있는 기업임에도 우리에게서 (물을) 훔치고 있다. 한국인이 싫은 건 아니지만 한국이 하는 일이 싫다”고 외치기도 했다. 환경부는 개인 급수전마다 줄어든 수량을 계산해 개별 보상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한 주민은 공개발언을 통해 “마을 내 각 가정당 농지 우물이 25개나 있다”며 “물 부족으로 인해 주민들이 서로 우물을 깊게 파려는 ‘제로섬 게임’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차그룹이 메타플랜트 단지 건설에 쏟아붓는 투자액은 자그마치 75억 9000만달러에 달한다. 전기차 생산공장에 55억달러, 메타플랜트 공장 내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배터리 공장에 20억달러를 투자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물 싸움’으로 인해 현지 주민들에게는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다.
브룩렛(블록 카운티)=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