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등산팀에 새로 오신 장로님 한 분과 같이 산길을 걸으며 그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과 딸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뷰티서프라이에 가서 나도 일했어요. 밤에는 늘 하던 청소일을 했고요. 몇 년 돈을 모아 그 브티서프라이 가게를 샀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된다는 부익부 빈익빈이야기를 증명하듯 가난한 흑인들은 세대를 이어 가난 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빈손으로 미국에 온 한국 분들 중에는 장로님처럼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부자가 된 분들이 많다. 도대체 뭐가 이분을 가난한 이민자에서 짧은 시간에 부자로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몇 가지 물어보았다. “어디에 사셨지요?” “팬사콜라 플로리다요” “가게가 얼마나 컸 어요?” “가게는 6천 스퀘어 피트였지요.” “밤에는 청소일을 하고 낮에는 뷰티서플라이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그렇게 해서 가게를 살 돈을 모은 거예요?” “밤에는 청소일 하고, 낮에는 가게일 하고, 그러니 돈을 쓸 시간이 없더라고요. 애들까지 온 식구가 일하니 돈이 모이더라고요.”
“큰 가게가 잘되었나요?” “뷰티서플라이가 잘되는 시기였지요. 그래서 가게를 두개를 더 샀어요.” “그럼 뷰티서플라이 가게를 세 개를 가진 사장 님이 된 거예요?” “그렇지요.” “그럼 돈을 엄청 많이 벌었었네요?” “좀 벌었지요. 집에 돈 세는 기계를 사다 놓고 하루에 번 돈을 세었지요.” “손으로 세려면 너무 많이 시간이 걸려 서요?” “그렇지요.”
우린 오르막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미국에 온 초기에 한국 갔는데, 친구들이 너는 미국가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요. 청소일 한다고 하니, 야, 여기서도 잘 사는데 왜 미국가서 고생하느냐고, 나를 불쌍히 여기더라고요.” “후에 뷰티서플라이 사장님이 되어서 그 친구분들 만나봤어요?” “물론 만났지요. 그때야 부러워하면서 아들 취직을 부탁하는 친구도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평생 미국에 살아도 가난하게 사는데, 장로님은 가난하게 시작해서 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어보았다. “글쎄요. 열심히 살았지만 운도 좋았어요.” “밤에는 빌딩 청소일을 하시고, 낮에도 일하시느라 돈 쓸 시간이 없었다는 것 이해가 돼요. 그런데 운도 좋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우리도 가게를 하나 사고 싶다고 했을 때 장소 좋은 곳에 나온 매물을 만난 것도 운이고, 가게를 샀을 때가 한창 그 비지니스가 잘되던 시기인 것도 운이지요.” “뷰티서프라이도 시류를 따르나요?” “그럼요. 지금은 전 보다 잘 안되요.” “지금은 가게를 다 팔았어요?” “한 개는 팔고 두개는 애들이 지금도 하고 있어요.”
가게를 하시면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나 물어보았다. 도둑과 강도라고 했다. 손님으로 와서 물건을 가방 속에 몰래 넣어가지고 가는 도둑들을 매일 잡기도 하고 못잡기도 한다. 한 흑인 여자 종업원이 일을 그만 두고 이웃 거리에서 무허가 매장을 만들어 물건을 팔았는데, 알고 보니 장로님 가게에서 훔쳐간 물건들을 팔고 있었던 일도 있다. 금과 금제품을 무장 강도들이 좋아한다는 소문 때문에 그의 가게에선 금은 취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업하면서 마누라와 딸과 내가 다 죽을 뻔한 위험한 적이 있지요.” 그가 말했다. 무장 강도가 침입했을 거라고 상상했다. 내 상상은 어긋났다.
2001년 9월 10일 같은 업종을 하는 가족 3명과 장로님 가족3명 그렇게 6명이 비행기를 타고 뉴욕 뷰티협회가 주최한 쇼에 갔었다고 했다. 새 상품, 고객들이 찾는 좋은 상품을 고르는 일은 여자들이 잘해서 아내와 딸이 동참했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가기로 했다.
9월 11일, 아침 9시, 딸들이 나오지 않았다. 늦잠을 자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나온 딸들과 서둘러 쌍둥이 빌딩에 가려고 했다. 10시가 가까웠다. 호텔밖으로 나서는 데, 꽈당탕탕 천지개벽 소리와 함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파편이 날렸다. 하늘은 먼지로 뒤덮이고 사람들은 고함치며 달렸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쌍둥이 빌딩 중에 남쪽 빌딩이 무너진 것은 9시 59분이고 북쪽 빌딩이 무너진 것은 10시 28분이라고 한다. 세계 무역센터 테러로 2763명이 사망한 속에 민간인 2192명, 그 속에 장로님 일행이 포함될 뻔했는데 딸들의 늦잠 덕에 기적 같이 살았다고 한다.
장로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편 영화를 본 것 같다. 미국 속에서 한국이민들 중에는 의학, 과학, 기술, 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공헌을 하는 분들도 있다. 재산을 숨기고 극빈자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 받으며 고급 차 타고 골프 치며 천국에서 산다고 착각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시민들 중에 장로님 같이 열심히 일해서 떳떳하게 잘사는 분들이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많아 자랑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