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어디 가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큰딸이 물었다. 8년 전에 잠시 머물었던 세도나와 눈앞에 두고도 밟아보지 못했던 자이언 국립공원을 떠올렸다.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 지역들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됐다.
딸은 재빨리 내가 거론한 두 지역을 묶고 그 사이의 볼거리들을 죽 나열해서 여행계획을 세웠다. 여름방학에 열었던 할머니 캠프를 해체한 다음날, 남편과 나는 간단한 가방을 들고 라스베가스로 가서 먼저 도착한 딸네 가족과 합세했다. 뜨거운 사막의 열기에 휘황찬란한 카지노 건물들은 한풀 꺾였지만 가는 곳마다 넘치는 관광객들의 온기로 후끈했다. 한 카지노에 있는 Adventuredome 테마파크에서 아찔한 롤러코스터와 Superkart 등 신나게 타던 7살 손주를 어른 넷은 그림자로 따랐다.
그리고 MGM 호텔에서 태양의 서커스 ‘KA’를 봤다. 엄청나게 큰 공연장에 들어서서 중앙에 있는 지정석에 앉자 한 배우가 어린 손주의 눈높이를 높여주는 두툼한 방석을 가져와 분위기를 띄웠다. 총 9층 높이, 지하 4층과 지상 5층 높이의 공간에 360도 회전하는 무대를 여러 나라 출신의 재능꾼들이 자유자재로 뛰며 펼친 묘기의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권선징악을 풀어내는 스토리에 화려한 분장도 멋 졌고 특이한 빠른 템포의 좋은 음악에 온 가족이 숨을 죽이고 보는데 깜빡 졸던 나를 옆에서 남편이 깨웠다. 솔직히 피곤했는지 아니면 환상적인 설정에 내 열기가 식었는지 모르겠다.
40번 도로로 애리조나주의 세도나로 향하는 내 마음은 예전과 달랐다. 그땐 낯선 지역의 색다른 환경에 기대감이, 이번에는 그때 체험했던 느낌을 다시 하게 되는 흥분이 일었다. 세도나의 낯익은 거리를 지나서 전에 묵었던 Red Rock 주립공원을 끼고 있는 숙소를 찾아갔다. 포장된 도로를 떠나서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한참 구부정하게 들어가는 길은 변함이 없었다.
오랫동안 불교 명상센터 였던 곳을 북부에서 내려온 메건과 레베카가 원주민의 영적 센터로 바꾼 ‘Sedona Sacred Rocks Retreat Center & Airbnb’에 도착하니 전에 느꼈던 응집된 에너지가 산란하게 분산됐고 왠지 어수선했다. 사람의 자취가 없고 그라운드 여기저기는 돌봄을 받지 못한 야생 지역이었다. 신성하다던 돌덩어리 서클 중앙에 초연한 크리스탈을 옆에서 보살상과 함께 천주교의 성모상이 둘러있었다.
말 구유에 다가가니 세 마리의 말이 다가왔다. 벽에 붙은 이름을 보니 전에 우리 가족이 몸뚱이에 페인트 칠을 하며 치유와 명상을 즐겼던 Cosmo, Brogan, Cece 여서 반가웠다. 가까이 있는 티피 천막은 헤어지고 낡아 뜨거운 여름에 거리에 앉은 노파 같았다. 치유와 명상의 장소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안타까워 주위에 흩어진 붉은 암벽으로 내 시선을 흩었다.
다음날 Bell Tower 도는 트레일을 걷고 돌아와 메건을 만났다. 전에 우리 가족에게 Shamanic Journey Drumming을 유도했던 레베카는 동부로 떠나갔고 메건 혼자서 피정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전에는 Morning Medicine Wheel, 맨발로 돌 서클을 돌면서 삶의 순환과 세상만사 이치를 인도하던 메건이 이번에는 소리 치유, Sound Healing 해줬다. 한쪽에 작은 사이즈부터 조금씩 큰 사이즈의 7 우유 빛 크리스탈 옹기들을 둥글게 죽 놓은 중앙의 의자에 메건이 앉았다. 각자 매트리스나 쿠션에 편하게 앉거나 누우라고 권유하고 발은 크리스탈 쪽으로 향하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
메건이 분위기를 안정시키는 원주민 노래를 부른 후 드럼채로 크리스탈 옹기들을 쓰다듬듯이 돌리니 맑은 진동이 만든 사운드가 약하게 강하게 울렸다. 편안한 의자에서 졸던 남편이 화들짝 깨어났고 그렇게 반복되는 울림이 계속되어도 한쪽 담요위에 누웠던 사위는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흥얼흥얼 원주민 노래를 따르던 손주는 진동에 몸을 맡겼고 딸은 참선하는 자세로 눈을 감았다. 나는 메건의 움직임을 따르며 사진을 찍고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운을 내 보내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집중이 힘들었다. 불교와 원주민 영적 기운이 가득했던 피정센터가 차크라(Chakra), 정신적 힘으로 기울어 있었다.
숙소 2층 발코니에서 이틀 밤을 별들과 은하수를 찾았지만 밤하늘은 여느 벌판의 밤하늘과 같았다. 이제 세도나를 관광지로 받아들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세도나를 떠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