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아들이 사는 조지아 주 동쪽으로 길을 나섰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시작하여 다섯 개 주를 거쳐가는 여정이었다. 우리가 지나던 고속도로는 온통 베인 풀의 신선함으로 가득했다. 고속도로 갓길과 중앙 분리대 잔디 위에는 잔디 깎는 기계를 장착한 트랙터가 엄청 많았다. 어느 곳에는 여덟 대가 두 대씩 나란히 움직이며 풀을 깎았다. 어디는 두 대가, 어디는 한 대에 두 개의 잔디 깎는 기계를 매달고 작업하고 있었다. 풀은 깎여 나가면서도 이렇게까지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다니, 먼 길 가는 나로서는 풀과 그것을 다듬는 일을 하는 분들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아들이 사는 도시에 가까워지자 해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달큰한 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유로운 기운이 가득한 듯했다. 드디어 고속도로를 벗어났고 아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출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유소가 나타났다. 친숙한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 같아 그것 마저도 반가웠다. 날씨는 화창하고 도로는 막힘이 없어 힘들이지 않고 아들네 도착했다. 자동차로 10 시간 걸리는 그 거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들이 집밖으로 나와 포옹으로 아빠와 형, 그리고 엄마를 맞이했다. 아들 얼굴을 보니 그냥 좋았다. 곧 밤이 깊어져 잠 자리에 들었는데, 낯선 잠 자리가 주는 선잠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 피로감은 아들을 만난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들네 가면서 뭔가 선물을 하고 싶어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실내 식물을 사 달라고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들이 우리 집에서 이사 나갈 때 내가 키우던 식물을 준다고 했더니 질색하였다. 자신이 그것을 가져가면 죽일 것이 뻔하다며 극구 사양했다. 나는 집안에 초록빛 생명이 있으면 보기에도 좋고 공기 정화도 해주어서 좋다는 이유로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은 못이기는 척했고, 나는 지지플랜트 화분 하나를 아들에게 안겨주는데 성공했다. 아들은 꼼꼼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식물을 맡겨도 걱정은 안 되었다. 자신이 식물을 보살피는데 서툴다는 것을 아니까 나름 잘 키워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애쓸 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화분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새싹이 나와서 줄기가 커다랗게 뻗었는데 어떻게 세워줘야 하느냐, 화분 공간이 빽빽한데 괜찮냐며 식물 소식을 가끔 전해주었다.
아들네 도착한 다음 날, 실내 식물을 사러 농원에 갔다. 아들은 나에게서 받은 지지플랜트를 분갈이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화분에 뿌리를 나누어 심고 싶은데, 엄마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나는 그래 그러자,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들의 변화를 기특하게 여기는 나의 마음은 실내 식물과 화분 갈이에 필요한 물품을 선물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는 실내 식물을 보기에 좋은 중간 크기로 사려고 했더니 아들은 작은 것을 선택했다. 작은 것부터 키워보고 싶다며.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피스 릴리와 골든 포토스를 골라주었다.
또 하나 화분, 아프리칸 바이올렛도 선물했다. 이것은 일 년 전에 지인에게서 받은 것을 번식시킨 것이다. 지인에게 받았을 때는 손톱만한 이파리가 몇 장 있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잎이 진초록이 되면서 넓어졌다. 그리고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꽃이 한참 동안 피어 기쁨을 주었다. 나는 그 화사한 기쁨을 아들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분갈이를 뒤뜰에 그늘 지는 시간을 골라 시작했다. 겨우 화분 몇개를 다루는 일이고 단순한 과정의 분갈이인데도 아들은 이 일에 관심있게 참여하였다. 자신의 화분이라 그런지 뭘 시켜도 투덜대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녀석의 변화에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식물을 다루는 놀이가 아주 즐거웠다. 아들도 식물을 돌보는 내내 즐겁기를 바란다. 실내 식물을 키우는 일이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지구 환경을 해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실천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가볍게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고 남은 식구들은 뒷정리를 하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아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