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연극 감독 겸 교수였던 마시 아를린(73)과 뉴욕대 대학원생 이가영(25) 씨는 뉴욕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로 살고 있다. 아를린은 8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지난해 교직에서 물러난 뒤 수입이 없어지자 함께 살 사람을 구하게 됐다. 룸메이트를 연결시켜 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기숙사 대신 조용한 거주지를 찾던 이씨와 만나게 됐다. 이씨가 집세로 월 1000달러를 부담하면서 아를린은 건강보험료·자동차보험료 등 각종 비용 부담을 한결 덜게 됐다.
이처럼 월세와 생활비가 오른 탓에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1946~64년생)와 청년층이 함께 사는 ‘붐메이트(Boom-mate·베이비붐과 룸메이트의 합성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과 폭스뉴스 등이 최근 전했다.
하버드대 공동주택연구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 100만 명이 현재 혈연관계가 없는 룸메이트와 동거 중이다. 과거 대학생들이 주로 찾던 ‘룸메이트 찾기’ 사이트는 최근 들어 고령자로 넘쳐난다고 한다. 거주 정보 사이트인 스페어룸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재 룸메이트와 살고 있는 4명 중 1명이 45세 이상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렇게 ‘붐메이트 열풍’이 부는 이유는 주택 임대료 등 각종 비용이 올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의 주택 임대료는 코로나 19 이전보다 33%(전국 평균은 30%) 급등했다. 주택 보유자 입장에서도 내야 할 세금·보험·공과금 부담이 2020년 이후 26%나 뛰었다.
비싼 임대료 부담을 덜길 원하는 세입자(청년층)와 빈방을 세놓아 돈을 벌길 원하는 집주인(고령층)의 수요가 맞아 떨어진 결과가 붐메이트 현상이란 것이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같이 살면 생활비가 절약된다는 장점도 있다. 일부 집주인들은 “세입자가 집안일을 대신 해주면 집세를 깎아줄 의향이 있다”고 밝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고령자 룸메이트를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인 뉴욕노인재단의 운영자인 린다 호프만은 “1981년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달래려 룸메이트를 찾았지만, 지금은 재정적인 이유로 룸메이트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주택 가격 급등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맞물리면서 붐메이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많은 은퇴자가 집을 빚 없이 소유하고 있지만, 일부는 은퇴한 뒤에도 남은 대출금을 갚아 나가야 하는 처지다. 이와 관련, 하버드대 공동주택연구센터의 제니퍼 몰린스키 국장은 “빚을 진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소득이 비용을 따라잡을 수 없는 시기를 맞았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조셉 이오리오(71)의 경우, 2022년 반려자가 사망한 뒤 다달이 1000달러를 내줄 룸메이트를 받아들여 함께 살고 있다. 3개 침실을 갖춘 주택의 대출을 갚는 게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오리오는 블룸버그에 “룸메이트에게 받는 돈이 없었다면 대출을 갚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버드대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은 2012년 4300만명에서 2022년 5800만명으로 늘었다. 2027년까지 65세를 넘는 미국인이 해마다 410만명씩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산 관리업체 크리에이티브 플래닝의 제이미 배트머 최고투자책임자는 “은퇴기에 접어든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붐메이트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앙일보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