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자매결연 맺어 공동수업 계획도
고사리손이 전통 종이 한지를 쓰다듬는다. 붓펜을 쥐고 적어내리는 단어는 “사랑,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이곳은 조지아주에서 유일하게 한국어 수업이 특수 교과목으로 지정된, 둘루스 시에 위치한 채터후치 초등학교다. 이 학교 K~5학년 48학급 1100여명의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번, 45분간 한국어를 배운다.
귀넷카운티 교육구는 이중언어 집중 프로그램(DLI)을 통해 10개 초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의 최소 50%를 영어 외 스페인어, 불어, 한국어 등 다른 언어로 가르치고 있다. 선정된 10개교 가운데 스와니의 파슨스 초등학교가 한국어 DLI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 채터후치교는 이와 별개로 한국어 과목을 따로 마련한 경우다.
사흘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게 손녀 박효은양이 한글로 손편지를 쓰고 있다.
전교생의 한국어 수업은 유주연 교사가 맡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이민 와 조지아대학(UGA)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2019년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2021년 이곳에 부임했다. 그는 “처음 영어를 가르쳐주신 고교 선생님이 몸짓과 함께 책을 한 줄씩 읽어주던 기억이 있다”며 “그 기억 덕분에 ‘말’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전했다.
1100명 학생들의 한국어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유주연 교사(왼쪽).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의 성원 덕에 한국어 교육은 지난 3년간 크게 확대됐다. 유 교사는 “오는 10월부터 한국에 소재한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5학년 공동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내년 코리아 클럽 동아리도 운영한다”고 밝혔다.
유주연 교사가 10월 9일 한글날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12시 점심 식사를 마친 4학년 학생들이 올해 마지막 한국어 수업 시간에 모였다. 10월 9일 한글날의 의미를 설명하며 수업을 시작한 유 교사가 “지난 3년간 한국어 수업에서 배운 것을 다시 떠올려보자”고 제안하자 곳곳에서 이야기 보따리가 터졌다. 전통복인 한복, ‘조디악’(별자리)과 유사한 십이간지 전설, 미국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추석, 온가족이 빚어 먹는 송편, 보름달의 그림자에서 떠올린 방아 찧는 토끼. 작은 한국 박물관처럼 꾸며진 교실 곳곳이 학생들에게 힌트였다.
지난 3년간 한국어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의 손이 바빠졌다. 수업 유인물을 모은 파일을 뒤적여 재빠르게 손을 드는 학생들.
교실에서 한국어는 단순히 이색적인 말을 넘어 ‘존중의 언어’다. 유 교사는 수업 첫 시간부터 ‘공공장소 정숙’을 강조했다. “한국은 타인을 방해하지 않고 서로 간 예의를 지키기 위해 다 같이 있는 공간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한글에 익숙해진 만큼 타 문화를 존경하는 침묵으로 가득 찬 수업시간을 편하게 느낀다. 교실 밖에서도 유 교사와 아이들은 허리 굽혀 인사한다.
오늘은 한글 서예(캘리그라피)를 체험하는 날. 유 교사가 방학 기간 한국에서 사 온 한지와 붓펜을 꺼내 들었다. “오래 전 연필이 없었을 때, 깃털과 잉크를 사용했죠? 동양에는 붓과 먹이라는 도구가 있었습니다.”
한글 붓글씨 체험 수업에 앞서 학생들이 교육용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본딴 한글 세로획이 화면에 보인다.
종이 위 줄 긋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섬세한 강약 조절 방법을 익힌 뒤 실제 한지 위에 한글을 써 볼 기회가 생겼다. “한지는 거친 면과 매끄러운 면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붓 사용에 서툰 초보자는 거친 면을 이용하세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한 글자씩 적어나갔다. 마지막 한국어 수업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백지가 “사랑, 유주연 선생님, 감사합니다”로 채워졌다.
여전히 못다한 말이 많은 학생이 물었다. “(붓펜과 한지를) 아마존(온라인 쇼핑몰)에서 파나요?”
글.사진=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