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나에서 1시간 운전해서 Flagstaff에 도착하자 바로 The Museum of Northern Arizona 로 갔다. 지역의 과거 흔적을 보면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방에 들어서자 화면에서 방문객을 환영하던 콜로라도 고원의 다양한 원주민 후손들은 조상이 물려준 전통과 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남녀노소 보통 사람들이었다.
900년 전의 벽화는 그 당시의 독특한 생활상을 보여줬고 누군가가 신고 고원을 누비고 다녔던 흔적이 얼룩진 채로 전시된 짚신들은 옛 우리 조상들이 신었던 짚신을 닮았다. 더욱 원주민들은 준비되지 않은 자손들에게는 전통 지식을 전수해주지 않았고 외부인들과 도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선택된 자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벽에 걸린 Lindsey Curley 시인의 시 마지막 구절, “할머니가 한 말, 너는 더럽지 않아. 네가 여기까지 오느라 어떤 진흙 길을 걸어왔는지 내가 알아.” 내 할머니가 그런 따스한 말로 나에게 사랑을 주신 듯 기분이 좋았다.
말은 초기 스페인 개척자들이 데려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 신이 원주민을 창조한 후에 동서남북 환경에 따라 다른 말들을 창조했다는 구설이나 강력한 능력자가 태초에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재밌는 스토리도 있었다. 원주민들이 영적 능력을 가졌다고 믿은 말은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엮어 있어서 평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바호나 아파치 부족의 조상들이 살았듯이 후손들도 지역 환경과 어울려 사계절 오고 가는 대로 자연과의 균형을 잡는 의식을 치루면서 화합된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엿보니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새삼 부러웠다.
원주민 후손들이 창조한 선명한 라인의 전통 도자기에 끌렸다 나와서 도시관광에 나섰다. 그랜드 캐년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지나가는 도시라 다운타운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아이리쉬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념품 가게에서 본 상품에 적힌 글에 웃었다. ‘잡풀도 잘 알게 되면 꽃이다.’ 진리다. 사람을 사귀다 친해지면 다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멀리로 산이 보이는 들판에 우뚝 선 케빈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해바라기 꽃들과 이웃 말 세 마리가 다가와 반겨줬다. 말들과 오랫동안 어울려 놀던 손주의 머리 위로 붉게 번지던 석양이 넓은 평원을 감싸고 세상을 잠재웠다.
다음날 북쪽으로 가는 길에 Sunset Crater에 들렀다. 천년 전, 숲이던 지역 대지가 굉음을 지르며 토해낸 화산이 터진 곳인데 화산재가 주위 6만4천 에이커의 땅을 덮으면서 환경과 사람들을 완전히 변화시킨 곳이다. 거무죽죽한 화산재로 울퉁불퉁한 지역의 트레일을 걷다가 이곳 환경이 달과 비슷해서 NASA가 달을 밟은 우주인들을 이곳에서 훈련시켰고 또 달로 가져간 장비들도 시험을 했다는 안내문을 보고 새삼 지구와 달이 묘하게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소리는 없었지만 검은 화산회 토양 곳곳에 작은 아름다운 꽃들이 하얗게, 노랗게 그리고 분홍빛 선명한 별들로 반짝였다.
다음에 찾아간 Wupatki 또한 놀라운 유적지였다. 건조하고 더운 지역에서 900년 전에 형성된 동북부와 서부를 이은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활발했던 마을은 빈 들판에 덩그러니 흔적으로 남았다. 100개의 방을 가졌었다는 건물은 반쯤 허물어진 붉은 암벽 잔해였고 의식을 치루고 게임을 했다는 원형 서클 둘이 뜨거운 햇빛에 붉게 뛰던 심장이 떠난 빈 둥지로 말라 있었다. 도전을 주는 환경에서 사방의 여러 부족 사람들이 모여 물과 음식을 나누며 생존한 방식은 단순했다. 주어진 수확에 감사와 그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했다. 물질적인 소유보다 힘든 일과 영적 생활을 중시한 원주민들 삶의 방식에 배울 것이 많았다.
비와 생식력을 위한 의식을 치룬 장소에 서니 바람이 붉은 평원에 흩어진 Hopi, Zuni와 여러 Pueblo 옛사람들의 스토리를 모아왔다. 옆에선 손주에게 “가만히 귀 기울이면 무엇이 들리니?” 물으니 “아무것도 안들려요” 답한 아이는 아직 어렸다. 건조한 벌판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타난Cameron식당에서 유명한 ‘나바호 타코’를 먹고 손주는 원주민의 기념품을 샀다. 배가 부르고 마음이 훈훈했다.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은 뜨거운 태양열에 노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