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32)
한 무리의 아이들이 빗속에서 달리고 있다. 흑갈색 피부에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원색 옷을 입은 아이들,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책장을 넘기면 시장에서 옷을 맞추려 치수를 재는 아이가 보이고, 다음 장에서 아이는 새로 맞춘 빨간 셔츠를 입고 형들과 누나들을 따라가고 있다.
‘아프리카 차드의 개학날이 되었어요.’ 빨간 셔츠를 입은 아이는 토마이고 오늘 처음 학교에 간다. 토마는 학교에 도착했지만, 그곳엔 교실도 책상도 없다. 책 대신 도끼를 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은 “우리가 교실을 지을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첫 수업이에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햇볕에 말리고, 진흙으로 벽을 쌓고 책상을 만들고, 짚과 나뭇가지로 지붕을 올려 마침내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선생님이 칠판에 쓴 글자를 허공에서 쓰고 또 쓰며 익힌 다음에, 나눠 받은 공책에 배운 글자를 쓴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어느새 아홉 달이 휙 지나 방학이다. 교실은 텅 비었고, 때마침 내린 장대비와 거센 바람에 진흙으로 만든 교실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이제 그 자리엔 교실의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배운 것들이 모두 머릿속에 들어 있거든요.’ 다시 개학날이 되면, 이제 토마는 형이 되어 동생들을 데리고 학교로 갈 거고, 선생님과 함께 또다시 교실을 지을 것이다.
이 그림책 〈Rain School〉의 작가 제임스 럼포드는 미국인으로, 아내와 함께 오랜 시간 평화봉사단으로 일하며 여러 나라에서 전쟁, 기근, 난민 등의 문제를 접했다고 한다. 이 책도 차드에 머물 당시 우기에 내린 비에 진흙으로 만든 학교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이런 어려움을 겪고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차드 사람들에게 감동받아 쓴 작품이라 한다.
아프리카에 가본 적 없는 내가 아는 유일한 차드인은 ‘이스라엘 마다예’이다. 지난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예선에 나와 한국 선수와 맞붙어 국제경기에서 보기 힘든 1점을 쏴 화제가 된 양궁 선수이다. 이 경기가 중계된 후 많은 사람들이 마다예 선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방송에서는 차드라는 나라를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국이었으며, 독립 이후 수십 년간 내전 중에 있는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당연히 양궁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 장비나 지원이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다예 선수는 독학으로 양궁을 시작했으며, 올림픽 출전을 위해 자신의 본업인 전기기사 일도 제쳐뒀다고 했다.
이 선수에게 유독 관심이 갔던 것은 승패에 관계없이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이 세상을 향해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든 차드 국민들이 저의 승리로 펄럭일 국기를 보고 힘을 내길 바랍니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에 스포츠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요.”라는 인터뷰를 보면서 마다예 선수가 꿈꾸는 차드의 미래를 생각했다.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옛말은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흙수저’라는 말과 자주 비교된다. 열악한 환경과 변변찮은 부모 밑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빼어난 사람이 된 개천에서 난 용과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흙수저. 처음부터 기울어진 조건에 놓인 흙수저는 절대로 용이 될 수 없다는 자학적인 의미가 담긴 비교이다.
어떤 나라든 진정한 교육의 가치는, 모든 학생이 타고난 불평등에서 벗어나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여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교실이 없어 스스로 교실을 지어야 하고, 부족한 지원으로 공책이 너덜너덜할 때까지 써야 하는 차드의 〈Rain School〉에는 이러한 교육의 올바른 가치를 믿는 학생과 선생님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흙수저에게는 없는 희망이 있다.
어디가 개천일까? 그리고 요즘 세상에 용은 어떤 사람일까? 가난한 집안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더구나 내전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나라에서 보호대도 없이 홀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을 마다예 선수가 이 시대에 진정한 용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