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6: Hillbliiy Elegy
넷플릭스 포스터에 떠있는 엄마와 아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오리지날 제목인 Elegy (엘리지)라는 단어에서는 잔잔한 애수가 느껴졌고 이런 상반된 감정은 나를 영화로 이끌었다.
지명이라고 생각했던 힐빌리는 지명이 아니었다. 그건 한국인에게 조생진이라고 부르거나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모욕적인 단어였다. 그것은 미 중남부 애팔래치아 산맥 중심 주변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그들의 삶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밴스가 현재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그 J.D 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단지 재밌거리로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주인공인 밴스는 전형적인 힐빌리 가정에서 태어났다. 마약에 찌들어 사는 엄마는 일년에 한번씩 남자를 바꿀 정도로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도 매번 이번엔 잘 살거라고 이야기 한다. 아들은 엄마를 따라 엄마의 남자들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마약에 취해있는 여자와 함께 할 남자는 없었다. 같이 사는 남자들 역시 올바른 생활은 커녕 마약중독자가 아니면 다행인 수준의 사람들이었다. 포스터에서 보았던, 자동차 안에서 환하게 웃던 모자의 행복한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음에 올 폭풍우의 고요한 전조였다.
무심코 했던 밴스의 말 한마디는 엄마의 상처난 자존심을 건드렸다. 순간 폭발해버린 그녀는 아들을 죽일 듯이 때리기 시작했고 동반 자살이라도 할 듯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밴스는 간신히 차에서 도망쳐 근처의 인가로 숨었다. 출동한 경찰은 엄마와 아들을 분리시키고 밴스에게 물었다. 엄마가 너를 폭행했냐고. 떨어진 거리에서 둘은 서로를 바라본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엄마를 밴스는 이해했던 것일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약중독은 아들의 사랑으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들을 방치한 딸을 보다 못한 할머니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되고 밴스는 할머니와 살게 된다. 할머니의 엄한 사랑은 밴스에게 차츰 안정을 주었다. 마침내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힐빌리를 떠나게 되고 그 떠남은 예일대 법대까지 가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는 밴스의 자서전 격인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Hillbllly Elegy〉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아마도 책과 영화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실 이것은 미국사회에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단지 개천에서 용 나는 수준의 내용이라면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슈로 떠오른 것은 “문화”였다. 밴스는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벗어나고 서야 비로소 자신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철강 공장이 문을 닫자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그럴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의 사람들만 남게 된다. 그들 중 누구도 대학을 가기위해 노력하거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 않는다. 약에 찌들어 살기도 하고 멀쩡한 몸으로 알콜에 의존하며 아이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한테 그런 모습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당연한 것들은 생활이 되고 일상이 되면서 서서히 고착화 되어 그들만의 문화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밴스는 힐빌리를 벗어날 수 있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헌신적인 할머니가 있었고 해병대의 학비지원이 있었다. 다른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된 그는 피나는 노력을 했고 마침내 지금에 이르렀다. 때론 떨어져서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힐빌리라고 부르는 그들의 문화를 비하의 눈으로 보기 보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태어나 보니 주어진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했고 도우려 애쓰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 간다. 그것은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이었다. 밴스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문화의 보편적 의미가 아닌 다른 관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영화였다. 오랜만에 흡족한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이 푸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