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선 TV토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근거 없는 주장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시 당국이 “관련 주장을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확인하고 민주당과 백악관이 “혐오 발언”이라 비판해도, 트럼프는 12일 애리조나 투손 유세에서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는 내용만 빼고 “아이티 이민자들이 주민 반려동물을 훔친다”는 허위 주장을 반복했다. 트럼프 발언 이후 인구 6만2000명의 소도시 스프링필드엔 폭탄 테러 위협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허위 괴담의 출처로 미국과 영국 언론들은 ’극우 음모론자‘ 로라 루머(31)를 지목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루머가 자신의 SNS를 통한 며칠간 이민자가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퍼트렸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민 문제를 담당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격하는 데 이를 활용하도록 트럼프를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BBC도 토론회 전날인 지난 9일 루머가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먹는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12일 애리조나주 투손의 트럼프 전 대통령 유세장에서 한 지지자가 “아이티 이민자들이 주민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트럼프의 허위 주장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트럼프가 고양이를 안고 뛰는 이미지가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로이터
1993년 애리조나에서 태어난 루머는 극우단체인 ’프로젝트 베리타스‘ 등에서 활동해 온 극우 인플루언서다. ‘9·11 테러가 미국 정부의 내부 소행’이라는 등의 음모론과 반(反)이슬람 관련 괴담을 유포해왔다. 근거 없는 거짓 선동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퇴출당한 상태다.
지난 2020년 트럼프의 지원을 받아 플로리다주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트럼프와의 친분을 유지했고, 최근 트럼프의 선거 유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CNN은 “트럼프가 10일 TV 토론을 위해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루머도 트럼프의 개인 비행기에서 내렸다”며 “이에 사람들은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고 말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 대선 토론 다음 날인 지난 11일 열린 9·11 테러 추모식에도 루머는 트럼프와 함께 참석했다.
지난 10일 필라델피아주에 착륙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비행기에서 극우 인플루언서인 로라 루머가 내리고 있다. 로이터
루머는 트럼프와의 개인적 친분을 활용해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루머는 트럼프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고 트럼프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그가 연설하는 자리에 자주 나타난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를 대선 후보로 지지한다고 말한 뒤부터 루머는 트럼프에게 음모론을 집중적으로 불어넣고 있다”고 전했다.
해리스가 흑인이 아니라는 ‘인종 의문’ 제기도 트럼프가 아닌 루머가 먼저였다. 트럼프 캠프 측 한 인사는 CNN에 “루머가 아무 근거 없이 X에서 해리스의 인종을 지적했고 그것이 트럼프의 말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캠프에서도 루머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8월 트럼프는 루머를 캠프 내 공식 직책에 임명할 것을 캠프 측에 제안했는데, 고문과 지지자들이 이에 격분하며 거부했다. CNN은 “트럼프 대선 캠프의 수지 와일스와 크리스 라시비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트럼프의 판단을 흐리게 할) 트럼프의 곁을 맴돈 수많은 사람을 떨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루머는 이를 견뎌냈다”고 전했다. 더타임스는 “트럼프 측 인사들은 트럼프가 루머와 같은 분열을 일으키는 인물들의 말을 들으면서 실책을 범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프링필드엔 폭탄테러 위협…아이티 이민자 두려움 떨어
한편 트럼프 허위 주장의 대상이 된 스프링필드시엔 곳곳에 폭탄 테러 위협이 이어졌다. 이에 이날 스프링필드시 당국은 직원을 대피시키고 시청 건물을 폐쇄했다. 스프링필드시는 시청 홈페이지와 SNS에 “스프링필드의 여러 시설에 대한 폭탄 위협으로 오늘 시청이 문을 닫는다”라고 알렸다.
스프링필드시에 따르면 시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8시 24분쯤 시 여러 기관과 언론에 발송된 e메일을 통해 폭탄 위협을 인지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의 거짓 주장 후 스프링필드 내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등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