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도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하겠네?” 한국으로 안부 인사차 전화를 걸었는데, “음식은 무슨 우리 이제 간단히 준비해서 가볍게 지내고 바로 여행 가기로 했고 이번에 가족 모였을 때 의논해서 내년부터는 아예 차례상은 안 차리는 걸로 정하게 될 것 같아.” 나는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아가야 할지 몰라 그렇구나! 하고는 말을 못했다.
멀리 떨어져 나와 명절때마다 가족들 과의 추억을 기억하며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허전함을 짧게 인사 나누며 대신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그 대신 즐겁게 연휴를 즐기겠다는 말에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드니 아쉽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 언제부터였을까? 민족의 대 명절 추석과 설에 차례를 안 지내고 황금연휴라 말하면서 해외 여행을 간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더니 급기야 우리 집안에까지 이런 유행이 자연스러워진 모양이다.
어릴적, 명절은 그야말로 잔칫집이고 풍요로운 만남이면서 용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분주해지는 엄마를 도와 이것저것 재빠르게 심부름을 했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도 엄마를 돕겠다고 송편을 빚고 만두도 빚었다. 모양을 예쁘게 잘 빚는다고 칭찬받으면 더 신나서 보란듯이 더욱 예쁘게 빚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렇게 철없던 어린 시절의 명절은 새 옷 입고 맛난 거 실컷 먹고 용돈 받아 챙기는 맛에 그저 들뜨고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몸도 크고 마음도 커지고 나서는 번거롭게 집에서 음식 장만하는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 우리도 이제 떡이나 전은 사서 지내자고 투덜대며 거들었다. 나도 꾀가 났던 모양이다. 그럴 때 마다 엄마는 여러 식구 모여 먹는데 돈 주고 사면 그 값이 얼마고 맛도 변변치 못하다며 극구 광장시장이며 경동시장을 돌아 양손 가득 장을 봐 오셨다. 아이고 죽겠다 하면서도 말이다.
결혼하여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명절에 온 가족이 먹기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어머님께서 준비해 주시면 함께 거들고 뒷정리만 하였는데도 말이다. 대가족도 아니고 단출하게 부모형제가 전부인 시댁은 음식도 간단히 준비하고 차례도 가볍게 지낸 후 조부모님 산소를 다 함께 다녀오는데 오는 길엔 가까운 바다로 바람 쐬듯 한바퀴 돌면서 놀다 들어오곤 하였다.
미국으로 오게 된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 설이든 추석이든 집에서 상을 차려 음식을 준비하고 조상님들에게 절을 하는 예식을 하지 않았다. 천주교인이 된 지금은 성당에서 합동위령미사로 모든 걸 대신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전통명절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해주며 지켜가게 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미래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당부를 하지만 과연 제 나라 전통문화와 그 의미에 애정을 갖고 전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명절과는 상관없이 이곳의 일정으로 보내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한국 마트에서 맛있게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떡, 잡채, 녹두, 생선전 등 잔치음식을 사다 먹으면서 “얼마나 편하고 좋은 지 몰라.” 말하는 내가 추석 명절에 차례 안 지내고 여행 간다는 사람한테 서운해할 입장은 아닌 것이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몇 날 몇일 전부터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과 설을 위해 수고하여 온 가족이 다같이 먹고 나누던 그런 일은 이제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대에 맞게 많은 것들은 변해가는 것이리라. 직접 음식을 만들고 차례도 지내야만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고 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편리하다는 이유로 쉽게 잊혀져 가는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지키고 전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한가위만 같아라.” 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추석명절,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화목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축복의 인사이다. 오늘밤은 이 말이라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