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남편은 내가 도착하자 황당한 표정이었다. 내 고집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남편의 숨겨진 감정들과 걱정했던 마음, 안도감이 겹친 모습이 보였다. 차창밖으로 V자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웃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이 큰 차를 몰고 혼자 올 생각을 했느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나는 결승선을 통과한 승자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결혼해서 스무 번이 넘는 이삿짐을 쌌다. 좋게 표현하면 묵은 살림들이 조금 정리되고, 새로운 집에서 집안을 꾸미는 것이 마치 신혼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잠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산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러한 것들이 신선한 느낌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내가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적응하려면 적잖은 노력을 해야 했다.
이삿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남편은 멕시코에 이미 먼저 가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열악한 환경에 나를 두고 싶지 않다며 당신은 미국에서 그대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다 성장해서 나가고 없는데 혼자서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하기로 마음먹고 난 뒤 이삿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특히 해외로 하는 이사는 무조건 다 가져갈 상황이 아니었다. 이사경비를 생각하면 짐들을 다 버리고 새것을 사는 게 손익을 따져도 이익이라고 들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들과 화구와 그림들은 창고를 빌려 맡기기로 결정했다. 큰 식탁과 작은방의 가구들, 장식품들을 과감하게 정리해 나갔지만 쉽게 처분할 수 없는 것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멕시코 가서도 어차피 꼭 필요한 것들은 사야 했다. 문득 오래전에 지인이 유홀 트럭을 빌려서 이삿짐을 옮겼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와는 별개의 이야기로 들렸지만 미국 살면서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반짝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라도 한 듯 실행해 보기로 맘먹고 나니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유홀을 알아보니 장거리는 도착지에 차를 반납하면 되고, 덤으로 한 달간 창고도 빌려준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이왕 가는데 가구를 사지 않아도 될 만큼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결국 제일 큰 트럭을 선택했다. 문제는 내가 저 큰 덩치를 과연 운전해서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을까였지만 묘한 욕구가 자신감을 만들었다. 짐도 다 실었고 모두가 말려도 출발할 일만 남았다. 당장 오겠다며 기다리라는 남편을 극구 말리며 멕시코 국경에서 만나자고 했다. 올라가기도 힘든 운전석에 앉으니 왜 그렇게 앉은자리가 높아 보였는지, 승용차 지붕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막상 큰소리는 쳤지만 두려움인지 뭔 지 모를 만감이 교차했다. 혼자라는 것이 여러 의미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거리 운전에 필수인 크루즈가 없다는 것과 엑셀과 브레이크가 무거워서 어색했던 것도 이내 익숙해졌다. 비가 많이 와서 걱정된다며 전화하는 가족들에게 승용차보다 훨씬 운전하기 좋다며 트럭 운전사로 취직할까 생각 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큰 차들이 가는 주유소가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덕분에 편하게 주유도 했다. 자주 보았던 도로 주변의 풍경들이 새롭게 보이며 나를 응원하는 듯했다.
멕시코 국경 까지는 1060마일, 운전만 16시간이 걸렸다. 중간중간 잠시 쉬며 밥도 먹고 주유도 해야 하니 혼자서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해가 질 무렵에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정오쯤, 국경 근처에서 무사히 남편과 만났다. 결국 해냈다. 이삿짐을 싸면서 그동안 미뤘던 짐 정리를 나름 잘했다. 무사히 도착했으니 그도 감사했다. 수많은 생각을 하며 지나왔던 그 경험이 내 삶의 한 장에 색다른 채색을 해 준 것 같아 나도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지금도 가끔 승자처럼 운전석에 앉아서 찍은 사진을 보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희망이 생긴다. 삶의 새로운 도전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