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7
블랙 스완은 광기 어린 인간의 욕망을 충격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영화다. 고상하거나 우아하지도 않고, 우화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않다. 한 인격이 자신의 다른 인격을 파괴하면서까지 이루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을 괴기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니나 (나탈리 포트만 분) 는 뉴욕 발레단의 촉망받는 발레리나다. 연출감독 토마스 (뱅상 카셀 분)는 새롭게 각색한 백조의 호수에 백조와 흑조를 연기하는 1인 2역의 주연으로 니나를 선택한다. 토마스는 니나에게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의 연기와 도발적이면서 관능이 흐르는 흑조의 연기까지 완벽하게 해 내기를 요구한다.
니나의 삶은 온통 발레 뿐이었다. 니나를 임신해서 촉망받던 발레리나의 꿈을 접은 엄마는 니나의 일상을 모두 통제했다. 친구나 애인은 들어 올 틈이 없었다. 오로지 완벽한 발레를 위해 잠시의 시간마저 모두 연습에 쏟아 붓는 것이 니나의 일상이었다.
삶 자체가 순수한 그녀의 백조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흑조의 과감한 연기를 니나는 해낼 수 없었다. 일탈과 본능에 자신을 맡겨본 적이 없는 그녀는 처음으로 좌절과 불안을 느낀다.
더욱이 경쟁자 릴리 (밀라 쿠니스 분)가 등장하자 극도의 긴장과 불안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완벽한 발레를 해 내야 한다는 집착과 욕망은 환각과 환청으로 그녀를 잠식해 간다. 클럽에 가고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엄마를 거부하고 반항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현실에서 정말 일어났던 일인지 아니면 단지 니나의 환각인지 감독 (대런 아로노브스키: 영화감독)은 명확한 경계를 지어 주지 않는다. 영화 전체의 흐름은 이런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감독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할 수 없는 불안정한 감정을 통해 완벽한 발레를 해야 한다는 집착을 갖게 된 니나의 불안을 우리도 같이 느끼길 바랬던 것 같다.
자신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흑조를 향한 욕망에 잠식되어 가는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 또한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하다. 바짝 마른, 핏기 가신 얼굴에 보이는 광기어린 눈빛은 보는 사람마저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결국 니나는 릴리를 찔러 죽인다. 하지만 릴리를 죽인 니나는 허물을 벗은 듯 당당하게 날기 시작한다. 팔은 검은 털로 뒤덮이고 커다란 날개로 변신한다. 눈동자는 붉게 빛나며 마침내 완벽한 흑조가 된다. 왕자를 유혹하는 그녀의 춤은 자유로웠고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아름다웠다.
흑조로 변신되는 장면과 흑조의 모습으로 춤을 추는 광경은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영화 장면 중 가장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니나는 자신의 배에서 스며 나오는 빨간 피를 본다. 그녀가 찌른 것은 릴리가 아닌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다시 백조의 분장을 한다. 점점 번져 가는 빨간 피는 백조의 춤으로 흐르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완벽한 춤을 춘다.
빨간 피에 물든 흰 백조의 모습을 한 니나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니나가 죽음을 맞이 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에 대한 상상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살아있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순수성을 모두 잃고 검은 백조에게 잡아 먹힌 니나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인격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상황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백조에서 흑조로 다시 흑조에서 백조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그 변화의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른다. 그런 변화에는 상실의 아픔과 선택의 책임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는 욕심과 집착으로 변화의 강을 순조롭게 넘지 못하기도 한다.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 니나를 보면서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이런 인간적인 모습에 너무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장면들로 찝찝함이 오래 지속되는 영화였지만 다시 또 이 영화를 클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묵은 떼를 벗겨내는 것 같은 후련함으로 마음 속 깊은 감정들을 건드리는 묘한 매력이 느껴지기도 하는 영화다. 노이지 마케팅이라 해야 할까…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로 가슴 속에 잠자고 있는 나의 다른 모습을 잠시나마 돌아 보게 되었으니 감독의 작전은 성공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