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33)
“우리 할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에게 보여 주셨고, 우리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셨던 것을 이제 네게도 보여 줄 때가 되었구나.” 할아버지는 나직하게 말하고는 꿀을 한 숟갈 떠서 책표지에 얹었어요. “맛을 보렴.” 할아버지는 속삭이듯 말했어요.
메리 엘렌은 책 위에 얹혀 있는 꿀을 맛보았어요. “책 속에도 이렇게 달콤한 게 있단다.”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어요. “모험, 지식, 지혜…… 그런 것들 말이야. 하지만 그건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직접 찾아야 한단다. 우리는 꿀벌 나무를 찾기 위해서 벌을 뒤쫓아 가듯, 너는 책장을 넘기면서 그것들을 찾아가야 하는 거란다.”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패트리샤 폴라코의 그림책 〈The Bee Tree〉의 마지막 쪽을 먼저 가져왔다. 이 책만 본다면, 책 읽기를 지루해하는 어린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책 읽기가 얼마나 달콤하고 재미있는 일인지를 꿀벌 집을 찾으며 가르쳐 주는 이야기다.
도서관 책꽂이에는 패트리샤 폴라코의 다른 그림책들이 나란히 꽂혀있다. 그 중에서 〈할머니의 조각보〉와 〈할머니의 찻잔〉을 먼저 읽고, 〈꿀벌 나무〉를 읽었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가족의 7대에 걸친 삶을 함께한 ‘조각보’ 이야기와 이와 짝을 이룬 ‘찻잔’ 이야기를 읽으면서 유대인이 차르가 지배하던 제정 러시아를 강제로 떠나야 했던 역사가 먼저 궁금해졌다.
1881년 차르가 된 알렉산드르 3세는 슬라브 민족주의를 옹호했다. 러시아는 서구를 모방하지 말고 위대한 슬라브 정신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무지, 문맹, 가난으로 찌든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을 모두 유대인 탓으로 돌리고 무자비한 박해 정책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유대인의 3분의 1은 개종시키고 3분의 1은 추방시키고 3분의 1은 굶겨 죽인다’였다. 이로써 2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당시 이민의 제한이 없던 미국으로 향했다.(류모세의 〈유대인 바로 보기〉에서 정리)
제정 러시아 차르의 슬라브 민족주의가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았듯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은 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워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앞다퉈 힘없는 국가를 침략하여 식민지화했던 19세기 제국주의의 바탕도 변질된 민족주의였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에 배타적이고 침략적 성격을 띠지만, 또 다른 면에서 민족주의는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키려는 주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바탕이었으며, 지금도 국민 단결을 위한 캐치프레이즈로 쓰인다. 한 국가가 민족주의의 양면성 중 어떤 면을 선택하느냐는 사회의 지도자, 정치가의 역할이 크다.
페트리샤 폴라코의 그림책들은 대부분 작가의 가족 역사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이고 러시아 민속풍의 그림이 많다. 밝은색으로 그려진 드레스와 다양한 무늬가 수놓인 두건과 모자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닮았다. 작가는 지금, 러시아의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입은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며 대대로 이어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민족주의는 이런 것인가? 살고 있는 지역과 공유하는 문화와 풍속이 달라도 유대인을 유대인이게 하는 것이란… 그림책 속 미궁에 빠져 한참을 헤맸다.
책 읽기 싫어하는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꿀벌 나무’를 찾아보자고 한다. 벌집이 달린 나무를 찾으려 할아버지는 꽃밭에서 벌 몇 마리를 잡아 유리병 속에 넣고, 한 마리씩 풀어주며 벌 뒤를 쫓아 벌집을 찾아간다. 그 가운데,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참여하고, 벌집을 찾은 사람들은 함께 꿀을 따서 빵과 차를 나눠 먹으며 파티를 연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녀를 불러 꿀벌 나무 찾기와 책과 함께 꿀을 주는 것이 유대인의 전통이라며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가르친다.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전통인지, 벌꿀인지, 아니면 책 속의 지식인지 모르겠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종교전쟁이라는 사람도 있고, 민족전쟁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아무리 많은 땅을 차지한들 그것은 솔로몬의 영광이 그렇듯이 들에 핀 한 송이 백합꽃보다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