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잘 쓰는 게 좋은 책의 비결이라고 한다. 독자의 주목을 끌고 마지막 문장으로 화룡점정을 해서 강력한 인상을 심어줄 때 쉽게 잊을 수 없는 글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잘 쓴 대표적인 글 중 하나가 칼 마르크스와 프레드리히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이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 그가 얻을 것은 전세계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을 맺는다.〈공산당 선언〉은 평생 ‘남이야 뭐라든 제 갈 길을 갔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청년 시절 작성한 정치 팜플렛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선언에서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공산주의의 정당성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연성을 제시했다. 정치적 선언문으로서 이 선언만큼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것이 없다. 이 선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그것이 출간된 모든 나라에서 맹렬한 추종자들을 얻었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천재였고,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매우 치밀한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그도 보통사람들이 그러하듯 자기 시대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전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취하지는 못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붕괴와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예언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의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이러저러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상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천재였지만, 그 역시 자기의 시대를 완전히 초월하지는 못했다. 인류의 해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작 사슬에서 해방된 것은 시장자본주의였다. 20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했던 공산주의 체제는 채 100년의 역사가 지나기도 전에 급격히 붕괴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과거 폭력적 혁명의 예언서로서, 계급 투쟁의 지침으로서의 〈공산당 선언〉은 이미 유효기간을 다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적 모순과 현실세계의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흔히 지식인들은 인류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한다.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사상을 지도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오만하다. 특히 계몽시대 이후 성직자 대신 사회적 스승의 자리에 오른 현대의 지식인들은 대담무쌍하게도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그들이 사회적 병리를 진단할 수 있고 자신들만의 지성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세속적 지식인들은 사회구조뿐 아니라 인간의 습관까지도 변형시킬 수 있는 공식을 고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영웅은 신명(神命)을 무시하고 천상의 불을 훔쳐서 인간 세상에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였다.
레이몽 아롱은 이렇게 말했다. “정직하면서도 똑똑한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똑똑하지 못하고 똑똑한 좌파는 정직하지 못하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명석하지 못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 위선자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후에 점진적 사회주의자가 된 조지 버나드 쇼는 서양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고집쟁이들을 이같이 풍자했다. “누구든지 20세에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심장(감정)이 없는 사람이고, 40세가 되어도 아직 사회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두뇌(이성)가 없는 사람이다.” 이 말은 인류 역사에서 실패로 끝난 사회주의 이론을 아직도 좇고 있는 한국 좌파들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 씨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높은 수준을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한씨 개인의 영예일 뿐 아니라 국가적 쾌거이기도 하다. 이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이라는 한국 문학의 오랜 숙원이 풀렸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나라에서도 벗어났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이념성 때문에 일부 우려하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김규나 작가의 평가는 통렬하다. “한강의 작품은 문제가 많습니다. 부정적으로 언급하면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할 테지만, 시대의 승자인 건 분명하나 역사에 자랑스럽게 남을 수상은 아닙니다.” 김 작가는 지적한다. “수상 작가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다. 〈소년이 온다〉는 5·18이 꽃 같은 중학생 소년과 순수한 광주 시민을 우리나라 군대가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이야기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제주 4·3사건이 순수한 시민을 우리나라 경찰이 학살했다는 썰을 풀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