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넘게 쓴 휴대전화 케이스, 대용량 화장품, 부모님께 물려받은 옷들까지.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상에서 신상품이 아닌 오랫동안 잘 쓰고 있거나 저렴하게 구매한 물건을 자랑하는 영상이 늘고 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은 미 Z세대를 중심으로 ‘저소비 코어’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저소비 코어는 저소비(Underconsumption)와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다. 필요한 것만 사고 물건을 끝까지 쓰는 생활 방식을 뜻한다. 본래 평범한 일상복을 뜻하는 놈코어는 앞서 유행한 블록코어(유니폼), 고프코어(등산복), 발레코어(발레복) 등 패션 트렌드와 함께 쓰였던 말이다. CNN은 “최근 쇼핑 트렌드는 쇼핑하지 않는 것”이라며 Z세대에게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 중고 가구 등이 ‘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소비 코어는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미니멀리즘이나 절약 정신과는 다르다. 그보다 소비를 부추기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나 하울(Haul·대량으로 물건을 구매한 뒤 품평하는 행위) 콘텐트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이들은 자신을 인플루언서가 아닌 ‘디인플루언서’라고 소개하며 물건을 홍보하는 대신 요즘 유행하는 물건들에 대해 안 좋았던 점을 공유하고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반대하는 디인플루언서들. 사진 틱톡 캡처
이 같은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대한 역풍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팔로워 1440만명의 유명 틱톡커 미카일라 노게이라가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신상 마스카라를 홍보하면서 인조 속눈썹을 착용해 논란이 됐던 ‘마스카라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한 틱톡 이용자는 저소비 코어에 대해 “인플루언서 문화와 인플루언서 뒤에 있는 회사들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플루언서들이 착용하는 물건 대부분이 협찬이나 선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를 따라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틱톡 이용자는 “아침에 필라테스를 한 후 샐러드를 먹고 핫플레이스에 놀러 가는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에 질렸다”고 말했다.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처럼 되기 위해선 ‘꼭 사야 한다’고 말하는 소셜미디어 마케팅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피로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서울 한 백화점의 중고품 매장. 연합뉴스
이런 경향은 Z세대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도 바꿨다. 값비싼 명품과 유행하는 패션보단 지속 가능한 삶,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Z세대는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NYT가 전했다. 최근 ‘욜로(You Only Live Once· 현재의 행복을 위해 과감히 지출하는 행태)족’을 대체하고 있는 ‘요노(You Only Need One)’족도 비슷한 현상이다. 이들은 값싼 패스트 패션 제품을 여러 개 사는 것보다 비싸고 질 좋은 옷 한 벌이 낫다고 생각한다.
저소비 코어가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소비 둔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브렛 하우스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10년마다 경기 침체가 찾아오면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다”며 “이번엔 포스트 코로나로 시작된 ‘보복 소비’의 영향을 받았다”고 NYT에 전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분출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 비관론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하우스 교수는 “상품을 대량 구매했던 사람들이 긴축으로 돌아섰고, 이것이 저소비 코어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앙일보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