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차트레인 호수는 뉴올리언스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호수는 담수와 소금물이 섞인 소금호수로 분류되는데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 제일 큰 소금호수는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로 유타 주에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폰차트레인 호수가 가까운 줄은 알고 있는데 자동차로만 지나다녀서 거리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의 이웃집 여인은 폰차트레인 호수까지 걸어서 오가며 호숫가를 따라 쌓아놓은 둑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같이 걸읍시다, 제안했었다. 나도 걷는 걸 좋아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뒤집어쓰고 나면 맥을 못 출 게 뻔하므로 대꾸를 못했다. 아직도 낮기온은 초여름이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햇빛과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드디어 함께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몸의 감각의 살아난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화끈거린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고 콧물도 흐른다. 그럴 때면 교회 선생님이 주셨던 장 자크 상페의 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여지없이 떠오른다. 쉽게 얼굴이 빨개져서 곤란했던 소심한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양손가락이 구부리기에 갑갑하도록 부어 오른다. 오랜만에 걸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경험이 있으니 그것 역시 별일 아니다.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뻐근하다. 아마도 몸이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몸의 힘을 좌우로 균일하게 분배한다고 생각하며 걸어야겠다. 걷기는 내 몸을 세밀하게 느끼는 시간이다.
걷다 보면 탐험가가 된다. 자동차로 빠르게 이동해서 도통 걸어볼 기회가 없던 길들을 걷는 것은 꽤 흥미롭다. 거리마다 붙여 놓은 이름을 불러가며 분위기를 음미하다 보면 그 거리와 친해진다. 거리의 양 옆으로 늘어선 집들이 가지각색이다. 1960, 70년대 지어진 오래된 집들이라 그런지 정겹다. 앞마당을 가득 채운 할로윈 유령 장식, 꽃과 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화단, 집 외벽의 이끼가 낀 벽돌 등 살펴볼 것들이 잔뜩 있다. 집 구경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남의 집을 엿보는 사람으로 오해 받지 않기 위해 흘끔거려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같이 걷는 여인은 과실수에 관심이 많다. 이집에는 감나무가 있고 저 집에는 대추나무가 있다고 알려준다. 길가에 서있는 일본 자두나무 앞에서는 꽃 향기가 상당히 달콤하다며 코를 들이댄다. 나도 그를 따라 나무가지를 끌어와 냄새를 맡아보았다. 꽃 피는 시기가 아니라 향기가 흥청거리지 않아 아쉬웠다. 올리브 나무도 찾아냈다. 연둣빛, 자줏빛 그리고 검은색에 이르는 올리브 열매가 졸망졸망 한가득 달려 있다. 잘 익은 것으로 하나씩 맛을 보았다. 열매를 곱씹고 조금 지나자 익숙한 올리브 맛이 났다.
걷다 보면 소리의 존재를 깨닫는다.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가운데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한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까마귀가 거친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까마귀들이 집 앞에 있는 소나무 주위를 맴돌다가 나와 마주친 것이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가는 부모들의 자동차 행렬이 길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골목길에서도 자동차들이 쌩하고 달아난다. 할아버지가 집 앞에 물을 뿌려 빗질을 하신다. 깔끔한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싹싹 빗자루 소리가 리듬을 탄다.
호수길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이 나란히 뻗어 있다. 넓은 길로는 순찰차와 자전거가 다니고 좁은 길은 사람들이 걷는 길인가 보다. 사람은 어느 길로 다녀도 상관없지만 자전거는 넓은 길로만 지나다닌다. 넓은 길을 걷다 보면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번은 빠르게 다가오는 말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았다. 자전거에 탄 중년의 여성과 남성은 자전거 속도를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간다. 낭만적인 소리의 여운이 길었다.
걷기는 공간과 시간을 몸에 기록하는 행위다. 사람과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기억이 몸 어느 구석엔가 보일 듯 말 듯 쌓인다. 걷는 속도를 잠시 늦추어 바라본 풍경이 주는 평화와 위로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 싱그러운 아침 햇빛이 비추는 길이든 곧 어둠을 불러올 석양이 붉게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길이든 좀 더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걷기는 단순한 활동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낭만과 혜택은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