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 고풍스런 건물 즐비
시티마켓·플랜테이션 농원 눈길
국립역사공원 섬터요새도 가볼만
#. 개요
조지아주 동쪽에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도는 콜롬비아다. 하지만 최대 도시는 인구 15만의 찰스턴이다.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항구 도시 찰스턴은 남북전쟁 이전에는 미 동남부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그만큼 식민지 시대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찰스턴 다운타운엔 18~19세기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찰스턴이라는 이름은 1670년대 식민지 개척 당시 영국 왕이었던 찰스 2세에서 유래했다. 성스러운 도시(Holy City)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교회도 많다.
찰스턴은 19세기까지는 면화를 실어내는 중요한 항구였다. 돈이 넘쳐났고 그 덕에 부호들의 대규모 저택이 경쟁적으로 세워졌다. 1773년에 문을 연 찰스턴 뮤지엄은 미국 최초의 뮤지엄이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을 사고팔았던 미국 최대 노예시장이 있었던 곳도 찰스턴이다. 당시 흑인 노예들은 해변 저지대 개간에 동원됐고 벼농사와 담배, 목화 재배의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찰스턴은 1670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도시다.
찰스턴 주변에서 생산된 쌀은 밥맛 좋기로 지금도 유명하다. ‘캐롤라이나 골드 라이스’라는 쌀인데, 2023년 11월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이 쌀로 지은 밥을 대접했다고 한다.
찰스턴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최고 관광지이지만 애틀랜타에서 쉽게 여행할만한 거리는 아니다. 쉬지 않고 달려도 5시간은 잡아야 한다.
지난 9월 중순, 1박 2일 일정으로 찰스턴을 다녀왔다. 여행 후기, 간단히 정리한다.
#. 찰스턴 다운타운
찰스턴 다운타운 거리.
찰스턴 관광의 중심은 다운타운이다. 지도를 보면 쿠퍼강(Cooper River)과애쉴리강(Ashley River) 사이에 툭 튀어나온 반도 모양으로 뉴욕 맨해튼과 똑 닮았다. 반도 끝,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화이트 포인트 가든(White Point Garden)부터 산책했다. 우람한 나무들 사이로 개척 시대 영웅들 동상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공원인데, 사이좋게 산책하는 노부부나 웃통 벗고 달리는 젊은이들이 좋아 보였다.
찰스턴 도심 투어 마차.
공원과 연결된 미팅 스트릿(Meeting St.) 처치 스트릿(Church St.) 킹 스트릿(King St.)도 걸었다. 다운타운 관광의 핵심 지역으로 수백 년 된 옛 건물과 저택, 뮤지엄, 교회, 예쁜 식당과 상가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있다. 들뜬 표정의 여행객들을 태우고 다니는 투어 마차도 관광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는 시티마켓은 찰스턴 안내 책자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긴 열차처럼 서너 블록 이어진 건물 안팎으로 온갖 진귀한 수공예품들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모자, 부채, 그림, 신발, 기념품 등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잡동사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찰스턴 시티마켓 입구.
바닷가 도시답게 찰스턴은 게, 굴, 새우 등 해산물을 취급하는 맛집이 많다. 하지만 한인 여행객들이 남긴 후기들을 보면 값만 비싸고 우리 입맛엔 별로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구글 리뷰나 옐프 평가를 참고하면 맛집 선택에서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매그놀리아 플랜테이션
매그놀리아 플랜테이션 입구
사우스캐롤라이나에는 식민지 시대 때 운영되던 농원이 많이 남아있다. 플랜테이션이라 불리는 곳들인데, 지금은 꽃과 나무, 숲, 연못 등이 어우러진 전통 유적지로 개발되어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그중 하나, 매그놀리아 플랜테이션&가든(Magnolia Plantation and Gardens)을 방문했다. 찰스턴 다운타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이끼가 축축 늘어진 거목들이 무성하다.
애쉴리 강변에 자리 잡은 이곳은 1679년부터 드레이튼(Drayton) 가문이 경영했던 농원으로 규모가 1700에이커에 이른다. 진입로에서부터 스패니시 모스(Spanish moss)라는 이끼가 축축 늘어진 고목이 인상적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서면 갖가지 나무와 아열대성 꽃이 먼저 반긴다. 애슐리 강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독립전쟁 당시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았다.
매그놀리아 농원 매표소. 매표소는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다.
농원 안은 6마일에 걸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지만 농원 전체를 둘러보려면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트롤리를 타는 것이 좋다. 크고 작은 호수와 늪을 지날 땐 악어와 거북, 왕거미, 왜가리도 볼 수 있다. 트롤리 운전사 겸 가이드는 운이 좋으면 수달이나 뱀, 물수리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트롤리를 타면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농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옛날 이곳에서 노동했던 노예들 오두막집 4채도 주변 전답과 함께 복원되어 있었다. 이 집을 중심으로 ‘속박에서 자유로(From Slavery to Freedom)’라는 흑인 노예 추모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노예들이 살던 오두막집.
농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 어른 32불, 62세 이상 시니어는 29불이다. ▶주소: 3550 Ashley River Rd. Charleston, SC 29414
# 섬터 요새
둘째 날 오전에 방문한 섬터요새(Fort Sumter National Historical Park)는 남북전쟁 최초의 총성이 울렸던 곳이다. 찰스턴 다운타운 리버티 스퀘어(Liberty Square)에서 오전 9시에 떠나는 첫 배를 탔는데, 배편은 전날 인터넷(www.fortsumtertours.com)에서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섬터요새 답사는 왕복 배 시간을 합쳐 2시간 30분이 걸린다. 관광객들이 섬터요새로 가는 배를 타고 있다.
선착장은 리버티 스퀘어 말고도 쿠퍼 강 건너편 패트리엇 포인트(Patriots Point)에도 하나 더 있다. 승선 시간은 편도 30분이고, 섬에 내려 1시간 조금 넘게 머물다 돌아오는 일정이다. 공원 입장료 포함한 왕복 뱃삯은 어른 37불, 62세 이상 시니어는 33불이다.
섬터요새는 1812년 미국이 영국과 전쟁할 때 찰스턴 항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인공섬이다. 공사엔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동원됐고, 15년만인 1829년 완공됐다. 17m 높이의 외벽에 135문의 대포가 있었고 700명 가까운 병사들이 주둔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섬터라는 이름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독립전쟁 영웅 토머스 섬터(Thomas Sumter, 1734~1832)에서 따왔다.
섬터요새 방문자센터. 연방공원국 직원들이 첫 배를 기다리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1860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제일 먼저 연방에서 탈퇴했다. 이후 모두 7개 주(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가 연방을 탈퇴해 남부연합을 결성, 독립 국가를 세웠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추가로 4개 주(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아칸소, 테네시)가 합류해 남부연합은 모두 11개 주가 됐다. 이들이 북부와 4년간 벌인 전쟁이 미국 내전(American Civil War), 즉 남북전쟁이다.
섬터요새 주둔 병사들은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연방을 탈퇴했음에도계속 북군 편에 남았다. 지휘관은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 1805~1871) 소령이었다. 남부연합 측은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1861년 4월 12일 새벽, 섬터요새를 향한 포격이 시작됐다. 남북전쟁의 시작을 알린 첫 포성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앤더슨 소령은 포격 34시간 만에 결국 항복했다.
일부 복구된 섬터요새 현재 모습.
섬터요새는 남과 북 양측의 자존심이 걸린 곳이었다. 요새를 차지하기 위해 양측은 전쟁 기간 동안 5만 발 가까운 포탄을 쏟아부으며 공방을 벌였고 요새는 폐허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 복구 작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찾았지만 요새 곳곳에 무너진 성벽과 포탄 자국은 그대로 남아있다.
섬터요새는 2019년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됐다. 섬에 내리면 남북전쟁 당시 사용됐던 여러 종류의 대포를 볼 수 있고 전쟁 기록관 같은 작은 뮤지엄과 기념품 가게도 있다.
첫 배를 타고 들어간 덕에 매일 10시 섬터요새에서 거행되는 성조기 게양식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 중 몇 명이 공원관리국 직원들과 함께 성조기를 게양했다. 모두가 숙연하고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섬터요새 방문객들이 함께한 성조기 게양식.
남과 북이 자존심을 걸고 싸웠던 곳, 하지만 지금은 어느 쪽도 아닌, 미국인 모두의 섬이 되어 ‘아름다운 미국’을 함께 찬양하는 애국심 고양의 현장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연방공원국 직원과 함께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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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