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방영해주는 ‘추억의 명화’ 중에 몇 번을 다시 봐도 지겹지 않은 영화가 있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로마의 휴일’이다. 뻔히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볼 때마다 공주 역할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든다. 반짝이는 눈동자, 순진하게 깜짝 놀라는 모습, 티 없이 맑은 웃음, 잘록한 허리…젊은 그녀의 외모는 어느 하나 눈길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다. 말년의 오드리 헵번은 후진국으로 건너가 빈곤한 이웃들을 구제하는 자선의 삶으로 제2의 인생을 꽃피웠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이 주름이 가득했지만 젊은 시절 눈부시게 빛나던 모습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신체는 조금씩 기능이 떨어진다. 젊은 시절 뽐내던 싱그러운 외모도 흰머리와 주름투성이 얼굴로 변한다. 우리는 점점 더 오래 살게 되었고 그럴수록 더욱 길어진 노년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라떼는 말이야’로 상징되는 ‘꼰대’라는 말이 요즘처럼 성행하던 때는 없었다. 남녀노소가 ‘꼰대가 어쩌구 저쩌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가 꼰대인 줄 모른다는 점이며 자칭 다방면의 전문가여서 상대방의 말이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자신은 솔선수범하지 않고 남들에게 시키는 걸 좋아한다. 상대를 존중하기보다 자신을 떠받들어 줘야 좋아하며 잘난척 하는 것을 즐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괜히 나이만 들어 꼰대 소리 듣기 싫다며, 가수 서유석은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하는 수 없이 밀려서 꼰대가 됐다는 노래다. ‘30년을 직장에서 일하다 내몰렸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등산이나 당구장으로 다니다, 이제는 안 되겠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이 모두 옳았다, 뭐 좀 배워서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내용이다. 늙었으니 이제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출발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극히 건설적이며 긍정적인 인생을 노래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매우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소극적인 삶의 태도다. 내 늙음에 대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늙는 것에 대해 왜 변명이나 핑계를 대야 하는가. 왜 그럴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웰에이징 시대다. 웰에이징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닌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받아들이는 삶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답은 같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노인이 되고 싶다. 넉넉하고 윤택하지 않아도 삶이 그윽하고 만족스러워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입어도 어디에 살아도 즐겁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고마워하며 살 수 있는 분. 언제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 자신의 주변을 흐트러지지 않게 정리하시는 분. 자기를 애써 돋보이려고 하는 것은 실은 자기 확신이 없고 속이 텅 빈 모습이라는 사실도 보고, 늙음을 초조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추하고 딱한 모습인가 하는 것도 보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만나면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늙어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에 대해 더욱 완숙해지고,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들고 늙는 그 자체가 아니라, 정신의 완숙이 없이 육체만 늙어버린 상태이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진실로 싫어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외형의 주름살이나 구부러진 허리가 아니라, 아직도 다스리지 못한 욕망을 덕지덕지 내보이며 생리적 연치만 내세워 심술을 부리는 그런 노년의 상태일 것이다. 집안에도 그렇고, 나라에도 그렇고, 진정한 어른이 건재하고 사랑과 활기에 찬 노인이 계시는 곳은 눈부실 것 같다.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젊었을 때처럼 여유 있고 유머가 있게 하소서.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곱게 늙기를 힘쓰는 늙은이가 되게 하소서.”
감사하게도 애틀란타에는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치원’이다. ‘노치원’은 ‘노인들 유치원’의 줄임말이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데이케어센터’라고 부른다. 유치원과 노치원은 대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낮 동안 돌봐주는 것이 같고 정부 지원을 받아 이용하는 것도 같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건강체조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육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팔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제촉 말라 전해라/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국민체조로부터 시작하여 흥겨운 ‘100세 인생’ 체조에 이를 즈음이면 온몸에 열이 난다..
노치원에 가면 심심할 틈이 없다. 움직이고 어울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규칙적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지난주에는 마가렛 사장 이하 전 회원이 인근 채터후치강으로 가을소풍을 다녀왔다.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와 게임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재미 던지기를 하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은 천상 ‘어른 아이’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셔틀버스 타고 노치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