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노르웨이로 출장 갔던 딸이 노벨 평화 센터에 들렸다면서 그곳에서 발간한 책자, ‘Those Who Listen, Change the World’ 가져다 줬다. 작은 책자의 하얀 표지는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다. 솔직 담백한 진리에 잘 어울리는 얼굴이다.
오래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방문했었다.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건물들을 보면서 아득한 기분이 들었었다. 모국은 노벨상 수상자가 없으니 왠지 내가 살고 있는 지구와 상당히 떨어진, 어떤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 같아서 부럽고 가벼운 눈길만 주고 스쳐지나 갔었다. 그런데 몇 년 후, 바로 그곳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적에는 분명 그 건물이 기억나서 많이 흥분했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업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이 책자에는 세상의 평화는 무력이나 전쟁이 아닌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증언하고 성공적인 대화를 이루기 위한 8가지 기본원칙을 기술했다. 1. 대화가 기본 자세이고, 2. 안전한 분위기를 마련하고, 3. 관련된 모든 단체를 포함하고, 4. 상대방을 들어주고, 5. 각자의 체험을 나누고, 6. 질문을 하고, 7. 어려운 주제도 대화하고, 8.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더불어 노벨 평화상 수상자 8명이 이 8가지 대화의 기본원칙을 지혜롭게 그들의 활약에 사용한 성공담을 소개했다. 어떤 상황이든 모든 연관된 사람들이 같이 앉아서 대화로 문제의 실마리를 푼다면, 오해도 풀리고 상대방의 입장과 견해를 자신의 것과 동선에서 이해하고, 모두의 지혜를 모아서 평화로운 해결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여성도 참여하고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현명한 인간적인 자세다. 참가자들이 마음을 열고 호기심을 갖고 시간과 인내심을 투자하면 개인과, 사회, 세상에 변화를 이끌어낸다.
대화로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타결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으면 상황의 어려움과 미래의 도전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삶에 지혜와 풍성함을 주고, 더욱 역경을 겪더라도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했다. 그리고 불투명한 ‘우리’ 보다 명확한 ‘나’의 스토리와 체험, 지식을 나누면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상대방의 체험과 편견이 그들에게는 진실임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실천은 어렵지만 지극히 필요한 깨우침 이었다.
지구 곳곳의 난제에 진정 필요한 것은 외교적 수완이 있는 관련자들의 성실한 자세의 대화이다. 모두가 비폭력으로 평화를 추구한다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또한 대대로 물려받는 아픔도 사라지질 않을까. 분쟁의 당사자들이 노벨 평화 센터에서 제안하는 기본원칙을 갖추어 같은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시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진리는 평범한 사람살이에 똑같이 적용된다.
이 책을 읽은 후,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관점과 인생관으로 세상을 보는 자세가 많이 달라서 완전한 동의나 합의는 오래전에 포기했다. 그러니 예전에는 불협화음 자주 일으켰지만 오래 같이 살면서 적당히 회피하는데 두 사람 다 노련하다. 그리고 주위에 우리 부부처럼 따로따로, 몸은 하나지만 마음은 둘이거나 마음은 하나지만 몸이 둘인 지인들이 많아서 사람살이 그런가 싶다. 개인에게 이렇게 어려운 대화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가볍게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쌍방의 인내심과 진정한 의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이해한다.
하지만 요즈음 대통령 선거운동의 막바지가 진흙탕에서 튀는 것을 보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욱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배려되지 않는 막판꼴에 내 혈압이 오르내린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모든 정치인들과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노벨 평화 센터에서 발간한 책자를 읽고 개인보다 모두를 위하고, 갈등과 분열, 증오와 외면 대신에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특히 모국의 한강작가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여자로 발표된 날, 나는 42세 최연소로 190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출신 영국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만약에 (If)’의 한 구절 ‘…만약 네가 가차없이 지나가는 1분을/ 최선을 다하는 60초 장거리 달리기로 채울 수 있다면…’을 떠올렸다. 그녀의 열정적인 문학의 자세에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