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8
“어떻게 죽을 지를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 지를 알 수 있지.”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노교수의 일생이 담긴 말이다. 평생을 후학을 위해 몸바쳐 온 그에게 어느 날 질병이 찾아왔다. 저명한 사회학과 교수였던 모리(잭 레먼 분)는 루게릭이라는 자신의 병을 받아 들이기로 한다. 그는 죽음을 이야기하며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미치(행크 아자리아 분)는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살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인 제닌(웬디 모니즈 분)과는 조용히 이야기 할 시간마저 없다. 스포츠 전문 칼럼니스트인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알아주는 이름있는 기자다. 그는 우연히 티비 방송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리교수를 보게 된다. 자신의 꿈을 지지해주고 그에게 인생의 길을 안내해 준 등불과도 같았던 스승, 춤을 좋아하고 정 많았던 모리교수를 미치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미치는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그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확연히 다르게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만남을 피하고 싶다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디트로이트에서 모리교수가 살고 있는 보스톤까지 먼거리를 달리면서 미치는 생각한다. 어차피 한번은 찾아 뵈어야 하고 두번은 방문할 일이 없을거라고.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모리교수와의 대화는 미치의 마음에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한번의 방문으로 그칠줄 알았던 보스톤행은 화요일의 모임처럼 모리교수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미치는 거듭되는 모리교수와의 대화에서 소중한 사람인 제닌조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모리교수를 성인군자처럼 그리지 않는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며 괴로워 하곤 한다. 하지만 그날의 비탄은 거기서 끝낸다. 마음껏 슬퍼하고 남아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긴다. 따스한 햇살을 쬐고 맛있는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만 알 수 있는 삶의 에센스를 미치를 통해 세상에 알린다.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인함으로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노교수의 모습은 세상이 말하는 부와 명예의 빛을 사그라지게 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마지막까지 해내는 인간의 모습에서 눈물겨운 위로를 받게 된다. 그는 죽음은 삶의 마지막일 뿐 관계의 끝은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죽음 역시 삶과 마찬가지로 잘 살아내야 하기에 두려워 하지 말고 맘껏 사랑하고 이별하라고 말한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자신의 가치를 찾아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리교수와 미치는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구나이다. 죽음이라는 필연을 피해 갈 사람도 없고 학창시절의 푸른 꿈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 역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외면하고 산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 닥친 질병이나 사고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운의 꿈이 의미 없이 전락해 버리고, 자신의 신념이 시대적인 가치에서 벗어난다고 거절당할 때 우리는 세상과의 조율에 곤혹스러워 한다. 주인공 미치는 현실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현실과 타협해도 성공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이런 때 어떻게 하라고 배우지 못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자신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너무 무지하다. 이런 막막함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노교수는 죽음 앞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들려준다.
소설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소설보다 더 큰 감동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해 그 순간의 감정을 생생한 감동으로 전해 주고 있다. 대화에 따라 풍부하게 변해가는 얼굴 표정과 두 눈에 어려 있던 절절함에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하지만 아직도 죽음이 어색한 나에게 모리교수는 한가지 팁을 준다. 어깨위에 작은 새를 얹고 매일 그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지 물어 보라는 것이다. 작은 새가 그날이라고 말할 때까지 죽음으로 가고 있는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