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증언만으로는 입증 안돼”
동부 지역 한 재력가의 아내인 한인 여성이 수천만 달러의 자산 손실을 입은 뒤 대형 은행과 법적 다툼을 벌이다 패소했다.
이 여성은 남편이 치매 증상이 있는데도 은행 측이 부적절한 투자를 종용했고, 이는 자산 관리에 따른 은행 측의 의무 조항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연방법원 매사추세츠주 지법(담당 판사 앤젤 켈리)은 지난달 4일 한인 윤 돌저(77)씨와 남편 피터 돌저(87) 씨가 JP모건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관련, 원고 측인 돌저 부부가 은행 측의 의무 조항 위반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판결문을 공개했다.
윤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제임스 세리텔라 변호사는 재판 결과를 놓고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송은 지난 2021년 6월에 제기됐다.
소장에 따르면 남편인 피터 씨는 보스턴 지역에서 단열재 관련 사업가이자 투자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 부부는 지난 2015년 은퇴 자금 마련을 위해 JP모건에 투자 관련 자문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측은 노부부에게 합자 회사 형태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도록 만들어진 MLP(Master Limited Partnership) 투자를 종용했다. 이때부터 JP모건은 윤씨 부부의 자산 관리, 투자 등을 정식으로 담당하게 됐다. 이에 윤 씨 부부는 JP모건 측 투자 자문에 따라 MLP에 37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소장에는 “2014년부터 (남편인) 피터 돌저는 인지 기능 저하를 겪기 시작했고, 재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가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장에서 원고 측은 “아내인 윤씨는 JP모건 측에 남편이 기억력 감퇴로 종종 정보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설명해야 하는 일이 잦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알렸다”며 “그렇다 보니 은행 측이 윤씨와 통화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는 JP모건이 남편의 이러한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피터씨는 은행 측과 일명 ‘빅 보이 레터(Big Boy Letter)’라는 서류에 서명도 했다. 이는 당사자 간 합의를 공식화하는 문서로, 양쪽이 각각 비공개 정보에 대해 이를 근거로 상대를 고소하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다.
소장에서 원고 측은 “JP모건 측은 규정에 따라 순자산의 5% 이하를 투자하도록 자문했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오히려 수년간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투자 자금을 추가로 마련하기 위해 계속해서 투자 규모를 늘리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계속해서 포트폴리오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은행 측은 인지 능력을 상실하는 남편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신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결국 막대한 투자 자금 중 150만 달러만 남게 됐다”고 주장했다.
윤 씨 측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남편인 피터 씨의 치매 증세에 대한 의학적 서류 ▶은행 측의 내부 자문 규정 위반 정황 ▶투자 자문가가 남편의 치매 증세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등의 증거 자료를 제출했었다.
법원은 각종 증거 자료에도 불구하고 윤 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엔젤 켈리 판사는 “이 소송은 원고 측이 재정과 관련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인지 기능 저하를 겪고 있었다는 점을 피고가 알고 있었는지가 쟁점”이라고 전했다.
켈리 판사는 “안타깝게도 윤 씨의 증언만으로는 은행 측이 고령의 고객을 보호하는 데 있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현재 JP모건 측은 승소 이후 그동안 법적 다툼으로 인한 변호사 비용 등을 윤 씨 부부에게 청구한 상태다.
한편, 윤 돌저 씨는 미술 사학자로 20대 때 도미했다. 남편인 피터 씨는 단열제 관련 사업을 지난 1995년 허니웰에 매각한 인물이다. 이후 바이오 기술 및 한국 내 부동산 투자 등으로 부를 쌓아왔다.
LA지사 장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