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초성을 가지고 단어를 맞춰 보세요. “치매 예방에 좋다는 퀴즈를 풀어볼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화면에 ㅎ ㄹ ㅅ ㄲ 이 나타났다. 보자마자 나는 호로 새끼! 하고 외쳤다. 외치고 나니 힌트를 준다면서 “아침, 점심, 저녁 우리가 먹는 식사를 말한다.”는 짧은 문장을 띄워준다. 그제서야 나는 하루 세끼 라는 낱말을 떠 올릴 수 있었다. 얼마나 우스운 대답이었는지 한참을 웃었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던 남편에게도 장난삼아 문제를 내 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치매 예방을 위한 퀴즈풀이는 몇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사자성어 맞추기, 기초 상식문제, 넌 센스 퀴즈, 틀린 그림 찾아내기, 처음엔 문제를 보고도 답이 입에서 바로 나오질 않았다. 머릿속 하고 입안에서만 맴도는 바람에 한참동안 애를 먹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틀어 놓고 상식문제 50문항을 풀었다. 우리나라의 지역을 나누는 말인 경상도와 충청도, 강원도가 어떻게 만들어 진 건지 라는 질문도 생소했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고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의 머리글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재미나게 들렸다.
설거지를 하면서 한 문제 한 문제 풀어 가는데 이번에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라는 질문이 나왔다. 어디 일까? 아프리카 어디 작은 땅덩어리에 붙어 있는 소수 민족이 살법한 그런 곳인가? 하고 괜한 이름들을 떠올려 보는데 바티칸 시국이라고 정답이 나타났다. 평소 바티칸을 교황이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지 나라 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뜻밖의 답이었다. 세상에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지식일수 있구나 생각하니 어디서 함부로 아는 척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도 한다.
수명이 길어진 요즘 노인의 시대가 된 건 분명하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노인질환이 많아지며 치매 발병률도 높아져 너나 할 것없이 걱정과 불안으로 노년을 맞이한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기만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 한 건 더 말할 나위 없다. 더군다나 가장 염려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치매로 인해 자신도 잃고 가족도 잃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제 정신으로 살고 싶은 것이 본능 일 텐데 나 자신 조차도 내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기본 인격도 사라진 몸으로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치매이다 보니 가장 많은 사람이 두려워 하는 질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치매만은 걸리지 않아야겠다 싶어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라도 해보려 하는 게 우리들 마음일 것이다.
처음엔 치매 예방이 된다는 말에 솔깃해서 하나씩 풀어보았지만 배우는 재미까지 생기니 일석이조가 되는 놀이가 되었다. 이렇게 평소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들을 접하고 표현해 보고 몸을 움직이고 생각에 즐거운 자극을 주는 일들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젊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이니 자연히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남편과도 오랜만에 함께 배꼽 잡아가며 웃었고 안 쓰던 사자성어를 사용해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그렇게 호로 새끼 로 시작해서 일편단심으로 치매예방 퀴즈 놀이는 끝을 맺었다. 우리는 지금 예방차원에서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사실 시어머니께서 작년에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막내딸과 함께 살고 계신 어머니는 단기 기억상실이 시작되어 방금했던 말을 자주 반복하시고 물어보곤 하신다. 힘들고 어렵던 시절 안 좋았던 기억들부터 잃어버리시면 좋겠는데 어머님은 그런 일 들은 더 자세히 기억나는 모양이시다. 서운했던 일이나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리며 이야기를 반복하신다.
앞으로 치매 증세는 점점 심해지실 텐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할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어머님의 남은 시간이 가엾고 안타깝다. 아무리 수명이 늘어 백세 시대라는 말을 하지만 나와 가족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치매를 겪으며 오래 살고 싶진 않을 테니 말이다.